“이젠 소리칠 힘도 없어요…. 노근리의 진실은 이대로 역사의 무덤에 묻혀버려야 하나요” 28일 미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반대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온 정은용(鄭殷溶) 노근리사건대책위원장은 초췌한 표정으로 이렇게 울부짖었다.미국 AP통신의 ‘폭로’(지난해 9월29일)로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실상이 전 세계에 알려진 지 벌써 1년. 그러나 노근리사람들은 이제 ‘노근리’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진실규명’에 대한 일말의 희망으로 버텨왔던 지난 1년동안 ‘50년 한’은 짙은 배신감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도대체 미국정부와 우리정부가 지난 1년간 할일이 뭡니까. 피의 역사를 들춰내 상처만 덧나게한 꼴…” 정위원장과 함께 서울에 온 노근리사람들은 한숨만 내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의 말처럼 노근리 사람들에게 지난 1년은 ‘배반의 역사’로 점철됐다. 노근리대책위 등의 수십년에 걸친 진상조사 요구에도 꿈쩍않던 미정부는 AP통신 보도 이후 전면 조사에 나섰다. 우리정부도 조사단을 구성, 무려 14차례나 현장을 방문조사했다. 그러나 현재의 결론은 ‘이제 그만 됐다’는 것 뿐이다. 양국정부는 한바탕 ‘노근리 파티’를 벌여놓곤 음식물쓰레기 조차 치우지 않고 있는 꼴이다.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이 미국땅에 발생한 사건이라면 미국사람들이 지금처럼 할까요…” 노근리사건때 할머니와 형, 동생을 잃은 양모(59)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따져 물었다.
사회부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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