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교직에 몸담아온 나는 최근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와 뚱뚱한 여자가 교무실로 들어서더니 한 여 교사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심한 욕설과 함께 삿대질을 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선생이면 선생이지 무슨 권리로 핸드폰을 빼앗느냐" 는 것이었다.수업 중10여 차례나 벨 소리를 내는 학생의 핸드폰을 그 여교사가 뺏은 것이 화근이었다. 학생이 잘못했다고 하면 바로 돌려주려 했으나 학생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고 집에서 이야기를 들은 부모가 그날로 학교에 달려와 항의를 한 것이다.
사유재산 압수니 고발이니 운운하며 여교사에게 퍼붓는 그 부모의 욕설은 차마 듣기 민망할 정도로 거칠었다. 교감인 나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지만 나까지도 밀치며 막무가내로 굴었다. 결국 교장선생님이 나선 뒤에야 수습이 됐다.
교사가 학생들 보는 앞에서 학부모에게 뺨을 맞고 옆구리를 채여 실신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신문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내 앞에서 일어난 이날의 일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날 이야기를 굳이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교육이 대중화했다고 해서 교사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것일까.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는데 불현듯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가 떠올랐다. 매일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아내가 왜 그리 술을 마시냐고 묻자 남편은 괴로운 표정으로 "사회가 술을 마시게 한다"고 중얼거렸다. 사회가 뭔지도 모르는 아내는 남편에게 그 고통스런 술을 마시게 하는 사회를 원망했고, 나는 오래 전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둔하고 무력한 그 아내에게 연민과 동정의 쓴 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다.
그날 갑자기 '술 권하는 사회'가 떠올랐던 건 결국 아까 그런 학부모들이 우리 교사들에게 술을 권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교육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신뢰하고 머리를 맛대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서울 강서구 방화3동
신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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