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말 정부는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론을 들먹이며 결코 멕시코나 동남아 국가들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경상수지를 제외하고는 성장률 실업률 등 대부분의 지표가 좋았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래서인지 ‘펀더멘털론’ 만큼 우리 국민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용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알레르기성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진 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얼마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는 말만 하는 것은 중학생 수준의 접근이다. 거시지표가 아니라 이를 구성하는 실물경제의 하부구조가 오히려 더 중요한 펀더멘털이며, 이를 강화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혁 피로감과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각종 거시 경제지표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는 것으로, 통계의 마술이나 착시현상에 대한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개혁 피로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개혁을 해서 얻는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의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느낄 경우다. 그런 상황을 틈 타 집단 이기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뿌리를 깊게 내린다. 개혁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무리들끼리 이심전심으로 뭉쳐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개혁 피로감과 집단 이기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위기론이 제기되면서 다시 펀더멘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접근 방법이나 내용 파악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펀더멘털의 기반을 허약하게 만든 요인이 97년에는 무엇이었고, 지금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펀더멘털론’을 경험했다는 것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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