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에 의하면, 우리나라 현행법률은 8월말 현재 952건, 시행령 등을 합친 현행법령은 3,506건에 이른다. 이중 주요 법령 1,500건을 수록했다는, 내 책상머리 법전(法典)만 해도, 그 분량이 5,500여면이나 된다.그 법전의 법률 목록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법률이 많을 뿐 아니라, 꽤나 긴 이름을 붙인 법률이 여럿이라는 점이다. 그 중의 으뜸은 83자의 긴 이름을 가진 다음 법률이다.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간의 상호 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의 시행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의 재산의 관리와 처분에 관한 법률' ^이 것은 약칭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의 부수 법률이다. 이에서 보듯 국제조약 등에 연유하는 법률은 이름이 길다.
이 밖에 곡절이 있는 법률도 이름이 길다. 예를 들면 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4항에 의한 동원대상 지역내의 토지의 수용ㆍ사용에 관한 특별조치령에 의하여 수용ㆍ사용된 토지의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총 66자의 긴 이름을 가진 이 법률은 국보법의 뒷치닥거리를 위하여 97년에 제정됐다. 현행법 중 3번째로 긴 법률 이름이, 초헌법적(超憲法的)인 국보법의 근20년 긴 꼬리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다음 법률은 어떨까.
'한국조폐공사 노동조합 파업 유도 및 전(前)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등의 임명에 관한 법률'
총 56자, 이름길이 순위 7번인 이 법률은 작년 9월 여ㆍ야간 협상의 결과로 태어났다. 곡절 끝에 특검제를 수용하면서, 구차할 정도로 그 수사범위를 제약하다 보니, 법률 이름이 길어진 것이다.
그래도 이 법에 따른 특검 수사로 작년의 의혹사건은 그럭저럭 마무리가 됐다. '1회용 반창고'와 같은 효험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1회용 반창고'는 어디까지나 '1회용 반창고'일 뿐이다. 특검의 수사범위와 수사기간등을 너무 제약하여 진상규명이 미흡했을 뿐 아니라, 금년 들어 다시 불거진 의혹사건에 대하여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ㆍ야 영수회담을 열어 '1회용 반창고' 같은 특검 처방을 다시 내면 그만일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여당이 더 잘 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정답은 '1회용'이 아닌 상설(常設) 특검이다. 이 것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과 지금 여당의 야당 시절 지론이었음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상설 특검제가 처음 구체화하기는 89년 이른 바 3김(金)의 야3당이 발의했던 '특별검사의 임명 및 직무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뒤 김대중 현 대통령이 이끌던 야당은 14~15대 국회에 3차례나 같은 법안을 발의했었다.
그 골자는 특검법을 3년 한시법으로 하되, 수사대상은 국회 본회의가 의결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특별히 요청되는 사건'으로 하고, 수사기간을 6개월 이상 보장하는 것 등이었다.
그러니까, 상설 특검이라는 것이 지금 여당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은 없다. 야당시절 자기네가 발의했던 법안을 되살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 법안대로만 해도, 야당은 특검을 요구하며 원외로 뛰쳐나갈 까닭이 없다. 오히려 국회에서 특검법 발동을 발의 해야 할 테니까. 이처럼 상설 특검은 의혹해소만이 아니라 정국경색 예방에도 유효할 수가 있다.
작년과 금년의 의혹사건과 정국경색은 비슷한 사태가 언제라도 재발할 수가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1회용'이 아닌 상설 특검제가 필요하다.
김 대통령과 여당의, 야당 때 지론을 되새기는 역시사지(易時思之)를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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