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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작가들의 국제 연대를 위하여

입력
2000.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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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문화' 라는 말은 크게 번성했다. 그 세찬 문화 담론의 물결은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두 방향에서 왔다. 첫째는 혼돈에 빠진 좌파 이론들이다.89년 이후 체제로서의 사회주의가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가면서, 나침반을 잃은 진보 진영은 정치적 '패배' 를 문화적 '승리' 로 보상하기 위한 이론적 탐색을 계속해 왔다.

'유물론적 문화론의 정초(定礎)' 를 표어로 92년에 창간된 계간지 '문화과학' 이 지금까지 나오고 있고, 한 시사 주간지의 고정난 이름에서 비롯된 '문화 비평' 이라는 말이 어느덧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에 따라 등장한 '문화 평론가', '문화 비평가' 같은 말들이 이젠 그리 어색하지 않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예컨대 노래 평론에 독보적이었던 김창남씨 같은 이가 '대중문화 평론가' 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문화 평론가' 라는 말은 귀에 매우 설었다.

이제 그 '문화 평론가' 는 가장 고답적인 문화 이론가에서부터 대중매체에서 활약하는 만화 평론가에 이르기까지, 문화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모두 아우르는 일상어가 되었다.

이런 문화 평론가의 등장은 문화 담론의 물결이 흘러오는 둘째 방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 둘째 방향은 대중문화다.

자본의 압도적 영향 아래 변두리의 대중 문화가 주류화하고 전통적인 문화 장르들도 자본에 포섭되면서 모든 것이 문화가 되었다.

가요나 영화나 TV드라마만이 아니라, 의상 음식 놀이 볼거리 이벤트 등 문화 아닌 것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문화를 관장하는 정부 부처의 이름이 '문화관광부' 인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오늘부터 사흘간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2000 서울 국제 문학 포럼'은 이렇게 부풀려진 문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보수적' 인 담론들의 잔치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문학이라는 장르가 다른 예술 장르에 견주어 특별히 보수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대중가요의 가사에 이르기까지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는 대중문화 사회에 발빠르게 적응할 능력이 충분하다.

이 포럼이 '보수적' 으로 비친다면, 그것은 여기 참가하는 작가, 평론가들이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흔들리지 않는 '진지함의 무게중심' 을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가장 선진적인 문화 생산물은 문학적 장(場), 예술적 장, 과학적 장 같은 사회적 소우주들이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권력에 대해서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을 때만 나올 수 있다" 고 강조한다.

소설가 마가렛 드래블은 "돈을 위해 소설을 쓰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럴 경우 마치 더 높은 대의를 위해서 소설을 쓰는 체해서는 안 된다" 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나 이런 '보수적' 견해들 속에는 더 나은 사회와 예술을 향한 열망, 곧 진보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 열망은 국경과 인종을 넘어서 이 포럼에 참가하는 작가들을 하나로 묶는다.

이들은 평론가 파스칼 카자노바가 자율적 작가, 예술가들의 '탈민족적 인터내셔널' 이라고 부르는 국제적 수평적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진지한 작가들과 마주할 기회는 흔치 않다. 그리고 포럼이 열릴 세종문화회관이나 이 작가들이 강연을 할 대학들은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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