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열리면 으레 올림픽 영웅들이 탄생한다. 신기록을 세운 선수, 메달을 둘 이상 획득한 선수, 경기를 아슬아슬 역전시킨 선수, 팀을 이끈 선수…. 시드니올림픽에서도 벌써 많은 영웅들이 탄생했다. 신기록이 적지 않다. 24일 현재 2개 이상 메달을 따낸 선수 수가 수 십명, 5개의 메달을 따낸 선수만 남자 한 명(오스트레일리아의 이안 토르프·수영) 여자 한 명(미국의 다라 토레스·수영). 강초현 김영호 김수녕 선수는 우리의 새 영웅이 되었다.그런데 이번 시드니올림픽에서 세계적 영웅으로 가장 각광 받은 여자선수는 다카하시가 아닐까 싶다. 보도된 것처럼 다카하시는 24일 열린 여자마라톤에서 2시간23분14초로 올림픽신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이 얼마나 빠른가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우리의 손기정 선수가 세운 기록 2시간29분19초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다카하시의 이런저런 면모는 새삼 각국 언론의 뉴스거리로 등장했다. 24일 늦은 밤 NBC방송의 여자마라톤 중계방송을 보니 경기에서 바로 뛰따라오던 선수들을 동요시키기 위해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날카로운 감각을 가졌다, 평소 ‘전설적’이라 할 만큼 음식에도 성공에도 대단한 욕심을 가졌다는 등 해설이 많았다.
그러나 다카하시가 시드니올림픽의 새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올림픽의 운영방식이 여성을 위해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마라톤은 1984년 LA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됐지만 사실 그간은 남녀혼식마라톤처럼 남녀선수를 함께 뛰게 했다. 시드니올림픽은 사상 처음으로 여자선수들끼리 뛰게, 그리하여 ‘진정한 경쟁자들’이 전략을 구사하여 좋은 경기를 가질 수 있게 여자마라톤 경기를 운영했다. 방송들이 처음으로 여자마라톤을 중계하고 비로소 여성우승자를 대대적으로 인터뷰한 것은 물론이다.
올림픽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인류의 역사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성 억압의 역사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참가종목 판도, 우리 선수들의 메달 확보 가능성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따라서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1986년 이후 약 100년간 열린 올림픽이 여자들에게 얼마나 차별적이었는가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1900년대 초 의사들은 여성의 스포츠를 금지시켰다. 남성처럼 되어 버린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 엉뚱한 믿음에, 여성운동선수는 여성적이지 않다는 판단, 어떤 종목은 여성에게는 개방불가하다는 고집이 보태져 역대 올림픽은 여성을 차별해왔다. 몇 종목만을 여자에게 허용한 2회 1900년의 파리올림픽부터 시드니올림픽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선구적인 여성선수들이 없었더라면 총28종목의 경기가 진행되는 시드니올림픽에 여성선수가 지금처럼 25종목에나 참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올해 94세로, 시드니올림픽 개막식 ‘영예의 게스트’였던 로빈슨여사도 그런 이 중의 하나이다. 그는 1928년 당시 ‘여성에게 위험한 경기’ 800미터달리기의 오스트레일리아선수였다.
인터넷에는 올림픽 공식사이트(olympic.com)와‘올림픽의 역사’를 다룬 수 만개의 사이트가 있지만 여성의 올림픽역사를 묶어 정리한 사이트는 없다. 체육학 전공의 여성학자가 나와 우리의 체육 역사도 정리하는 날을 가다린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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