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가죽을 바꾸는 것인 동시에(改革), 골격을 뜯어고치는 일이다(reform). 그 만큼 고통을 수반하고, 이해당사자간의 갈등과 가치관의 충돌을 야기시킨다.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다시금 개혁이 추진될 전망이다.IMF위기와 같은 경제위기나 국가적 개혁이 거론되면 될수록, 잊혀지는 이름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지방자치이다. 중앙중심의 강력한 위기관리 정책을 구사하는 사이, 지방이나 분권 같은 단어는 알뜰히 잊혀지고 만다. 하기야, 중앙 가운데에서도 국회나 일반 집행부서는 철저히 배제되고 청와대와 일부 기획부처중심으로 개혁이 추진되는 판에야, 지방이 들어설 자리는 애초에 없다.
그러는 중에도, 1991년 구성된 지방의회와 1995년에 직선된 단체장은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다양한 비판과 한계 속에서도 이들은 민원행정을 가히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과거 청와대와 중앙만 쳐다보던 정책정향을 근본적으로 되돌려 놓기 시작하였다. 과거의 관선체제 아래에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주민위주의 행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한국의 지방자치는 그 발전단계로 볼 때, 제2의 단계로 진입하는 기로에 놓여있다. 91년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이 주로 지방자치를 위한 거시적인 구조를 도입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세부적인 운영을 위한 제도를 보완하고 '관례'를 축적해 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면, 주민투표법을 제정하고, 기관위임사무를 자치사무로 전환하며,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축소하고, 경찰과 교육업무에 자치의 성격을 불어넣는 일이 절실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주민의 참여를 촉진시키고, 지방정부의 관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지방자치라는 거대한 사회적 실험을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국가적 비용을 우려한다. 잦은 선거, 지방의원들의 자질부족, 단체장의 비리, 난개발, 지역간의 님비현상 등이 지적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들이 지방자치를 위축시키는 논리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 주민에 의한 '자치'가 수반되지 않는 분권화가 지역적 연고주의나 독선과 결합하여 가져온 과도기적 부작용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부작용들은 본질적인 의미의 '자치'를 확대함으로써만 제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과거 중앙정부가 통제하던 그 자리에 주민의 감시와 통제, 참여를 자리잡게 함으로써만 이러한 부작용들은 해소될 수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지방자치와 관련하여 매우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5월에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런던시장을 주민들이 직접투표로 선출했다. 전통적으로 기관통합형의 자치제도를 택해왔던 영국의 지방자치사에서 이것은 하나의 혁명이다. 이제는 기관구성의 형태마저도 주민들의 의사에 맡기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지방의회만을 두는 자치제도이든, 아니면 지방의회와 단체장을 함께 두는 자치제도이든 그 기관구성의 형태까지도 지역주민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대로 돌입했음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다시금 경제위기에 따른 개혁이 가속화 되더라도, 지방자치의 성숙을 위한 조치들이 사장되어서는 안된다. 분권형 사회의 건설은 우리가 새롭게 지향해야 할 국가경영의 한 모습이다. 더구나, 그것은 중앙으로 집중된 권한을 차지하기 위해 발생하는 지역갈등마저도 완화 시켜 줄 수 있는 방안이다. 오히려, 개혁추진 과제의 한 목록으로 지방자치의 확대를 포함시키고, 국가경영의 새 틀을 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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