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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初心과 私心

입력
2000.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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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과 소비국간의 수급 불균형으로 야기되었던 고유가 문제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다행히 미국이 비축 물량을 긴급 방출키로 결정함에 따라 천정부지로 치솟던 국제유가가 다소간 안정을 되찾고 있다. 고유가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은 절약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서민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요즘들어 절약을 강조하는 정부에 대해 평소와는 달리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왜 나만 손해를 보느냐는 것이다. IMF 초기만 해도 앞장 서서 금반지를 뽑았고, 자가용을 버리고 지하철을 이용했던 사람들이다.왜 이렇게 변했을까. 무엇보다 사회지도층의 일탈이 이렇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각종 비리 의혹은 결국 이들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국가경제는 어떻게 되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그동안 정부 정책이 신뢰를 얻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함께 지나친 자만심이 어느 사이 우리 주위에 팽배하고 있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예상보다 빠르게 경제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국민 모두가 허리 띠를 졸라매고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국제환경의 도움이 아주 컸다.

우리가 저금리 정책을 지속하고 환율을 안정시키며 주식시장 활황을 통해 소비를 늘리고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등 선진국들의 금리 인하와 이에 따른 일본 엔화 안정 등 외부여건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의 찬사에 넋을 잃어 진짜 해야 할 일을 중간에서 접고 말았다. 외환위기는 극복했어도 경제위기는 여전한데도 삼페인을 또다시 일찍 터트리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얼마전 미국 중국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스리랑카 등 의 교포단체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 97년말 외환위기 당시 이들의 모국경제돕기를 위한 성금 기탁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것이다. 전 총재가 이같은 편지를 보낸 것은 8월말 스리랑카에서 열린 동남아·대양주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했다가 현지 교민들의 서운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1,000여명이 고국의 환란극복을 위해 1만달러를 만들어 보냈는데 그 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자만(自慢)해 있었다.

97년말 IMF체제가 뭔지도 모르고 당한 우리 모두는 경제생활 전반을 옥죄는 많은 제약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뻔히 알면서 또다시 당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유비무환의 대비책만 갖추면 위기가 발붙이기 어렵겠지만, 최근의 상황도 위기론은 끈임없이 제기되지만 개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미 환란을 겪은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서 나타난 ‘IMF 3년차 증후군’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끝없이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작 중요한 실행은 제대로 안되고 있다. 대통령이 몇번이나 직접 경제를 챙기겠다고 공언을 했지만, 효과는 그때 뿐이다. IMF체제 진입 직후 한국측이 내놓은 우리 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보고 IMF 관계자들은 놀라면서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처럼 정확한 진단을 빠르게 할 수 있으면서 왜 외환위기를 맞았느냐는 것이다.

또다시 위기 국면을 맞으면서 IMF체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선 사회지도층들이 사심(私心)을 버리는 것이어야 한다. 무슨 염치로 다시 서민들에게 금반지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사회지도층의 각성과 실행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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