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고유가 사태에 미국정부가 나섰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전략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 3,000만배럴 긴급방출을 명령했다.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하락했고, 우리의 주 수입선인 두바이산 유가는 29달러선으로 떨어졌다. 고유가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는 우리에게는 가뭄 끝에 내린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그러나 석유값 안정을 예측하기에는 이르다. 미국내 비축유 방출 찬반논쟁, 사담 후세인의 최근 행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동태 등을 종합적으로 놓고 볼때 석유는 불안한 정치게임의 수단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석유값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법칙뿐 아니라 미국의 석유정책및 국제정치의 조그만 물결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우선 비축유 방출을 둘러싸고 미국내 정치 공방이 심상치 않다. 비축유방출은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기름값이 오르면 모처럼 올라간 인기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나 조지 부시 공화당후보는 비축유방출을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선심용이라고 맹공하고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정부 내에서도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이나 앨런 그린스펀 중앙은행총재같은 사람들은 비축유 방출이 심각한 ‘정책적 잘못’이란 점을 지적해왔다는 사실이다.
전략비축유는 미 정부가 1973년 중동전쟁으로 석유위기를 겪으면서 석유공급이 끊길때를 대비해 5억7,000만 배럴을 비축하여 왔으며 91년 걸프전때 한차례 방출했었다. 비축유방출은 단기처방일뿐더러 OPEC를 자극해 유가를 더욱 불안케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석유를 둘러싼 국제 분위기도 썰렁하다. 이미 하루 200만배럴 이상을 수출하고 있는 이라크는 최근 석유위기를 역이용, 91년 걸프전 발발때와 비슷하게 쿠웨이트의 석유도둑질을 문제삼아 불안을 자극하고 있고, OPEC는 증산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서방 소비국과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도 석유값에 거는 이익이 크다. 석유값이 올라 나쁠게 없는 나라들이다. 우리는 미국의 비축유방출을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국제적 영향력 행사가 어렵기 때문에 결국 비축유라는 내부용 비상수단을 쓴 것이다. 국제유가의 변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비축, 절약, 효율화 등 에너지 정책의 골간을 거의 무시해왔다. 그러나 그 정부에 또 기대를 해야한다. 부탁하고 싶은 점은 제발 다음 정권때에도 유효한 장기적 에너지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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