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딘플레밍과 메릴린치 등 유명 외국계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하이트맥주의 이름만 나오면 한결같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올들어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53%) 1위 자리를 견고히 지키며 상반기 총매출 7,400억원에 당기순이익 358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고의 판매기록을 올리고도 ‘자린고비 경영’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 않는 박경복(朴敬福·78) 회장 때문이다.
이들 외국 애널리스트는 이달 중순 기업분석을 위해 찾아간 서울 등촌동 아파트촌 부근의 하이트맥주 본사가 허름한 3층 콘크리트 슬라브 건물인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이트맥주는 지난해 여름 본사인 영등포 공장부지를 매각한 뒤 유통 자회사의 사무실 겸 창고로 사용하던 건평 300평 남짓한 현 건물로 이사했다. 지난해 4월 부채를 줄이기 위한 박 회장의 자린고비 경영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 결과 3년전 340%를 웃돌던 부채비율이 195%로 크게 줄었다.
당시 ‘하이트 신화’를 낳은 국내 최고의 맥주회사답게 서울 강남지역에 사옥을 마련하자는 내부 의견도 많았지만 박 회장은 단칼에 잘라버렸다. ‘외형적 허세가 내실경영엔 최대의 악덕(惡德)’이라는 신조에서다. 지은 지 27년된 2층건물을 3층으로 개보수해 본사로 사용하다 보니 올 여름태풍 ‘사오마이’때는 비서실까지 비가 새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어야 했다.
지방 공장 출장시 서울역에서 직접 기차표를 끊어 수행비서 없이 혼자 떠나는 박 회장은 손자들과 오랜만에 외식하더라도 대부분 자장면으로 때운다. 또 매년 명절 때 임원들에게 주는 선물도 고작 맥주 1박스다. 그나마 평직원들은 청주 1병으로 만족해야 한다.
박 회장의 이같은 인색함(?)에도 직원들은 큰 불만이 없다. IMF 위기를 맞아 타 회사들이 외국업체로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96년부터 4년간 맥주업계 부동의 1위를 지켜온 것이 CEO의 ‘한 우물파기’정신과 검약 덕분이라 믿기 때문이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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