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의 스파이 조직은 어딜까. 미국 CIA를 단연 으뜸으로 꼽을 것이다. 초강대국의 힘과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전세계 구석구석 첩보활동과 공작의 손길을 뻗치고 있으니, 별다른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스파이의 수준을 잣대로, 최고 스파이 조직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개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정답은 어차피 없다. 다만 옛 소련 KGB와 영국 MI6, 이스라엘 모샤드를 차례로 꼽은 러시아 전문가의 평가가 자못 흥미롭다.■푸틴 대통령의 정보특보 세르게이 이바노프는 올초 언론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면서, “CIA는 풍족한 자금에만 의존, 머리를 쓰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그 자신 KGB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영국 대외정보국 MI6을 최고로 평가한 셈이다. 그는 MI6 요원이 우수한 바탕을 탁월한 교육과 전통에 있다고 보았다. 비록 이중간첩이 됐지만 명문 이튼과 케임브리지를 나온 킴 필비같은 인재를 선발, 오랜 경험에 기초한 고도훈련을 시키는 결과로 분석한 것이다.
■또 다른 전직 KGB간부는 MI6 요원의 특성을 “신중하면서 창의적이고, 교활하면서 위험하다”고 표현했다. 특히 CIA 요원들과 달리 정중하고 세련된 것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특성때문에 과거 KGB는 모스크바에서 암약하는 CIA등 다른 서방 첩보원은 쉽게 추적했지만, MI6 요원만은 좀처럼 꼬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 속의 ‘최고 스파이’ 제임스 본드가 MI6 요원인 것은 결코 우연찮은 설정이다. 세련되면서도 교활한 살인면허 스파이가 본드다.
■MI6 이름은 1911년 ‘군사정보(Military Intelligence) 6국’으로 창설된 것이 굳어졌다. 94년 SIS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옛 이름이 아직 통용된다. MI6은 시대변화에 따른다며 본부도 런던 템즈강변의 중심지 첨단빌딩으로 옮겼다. 연갈색 벽에 녹색 방탄유리로 치장, 마야 궁전같다는 건물은 관광명소가 될만치 눈에 띈다. 이때문에 책임자를 C, M 등 이니셜로만 부르던 비밀주의를 벗어난데 대한 비판도 있었다. 그 스파이 본부가 테러조직의 로켓공격을 받아 건물과 명성이 함께 훼손됐으니, 전통을 깬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