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부담으로 금융 부실을 털어내는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금융정상화와 시장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고, 정부도 차제에 부실을 완전히 털어내기 위해 당초 예상보다 많은 조성목표를 제시했으나, 어쨌든 기업과 금융기관 경영의 실패책임을 국민들이 대신 떠안는 것임엔 틀림없다.▦국민부담, 얼마나 되나
1차 공적자금 64조원외에 2차로 40조원을 신규조성함에 따라 국민들은 모두 104조원의 보증채무를 안게 됐다.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1인당 217만원의 빚보증을 서게 된 셈이다.
예산이나 차관, 공공자금관리기금 등 우회적 방식으로 지원된 공공자금 27조원까지 합치면 보증이든, 간접지원이든 국민 한사람이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지게 된 부담은 291만원(총 131조원)에 이른다.
문제는 직접 국민 손실로 현실화할 금액이 얼마냐는 점. 재정경제부는 이에 대해 ‘계산불능’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주가가 오르거나, 매입했던 부실채권을 비싸게 팔면 보다 많은 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손실은 적어지고, 오히려 이익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계는 최소 60조~70조원 이상이 국민들의 직접 손실로 올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기존 64조원에 대해 정부예산에서 직접 지원되는 채권발행이자가 28조원이나 되는데, 회수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전가될 수 밖에 없다.
신규 공적자금 40조원에 대한 이자(15조~18조원)도 마찬가지. 1,2차 공적자금에서 퇴출금융기관 예금대지급금 31조5,000억원 가운데 19조원이상(회수율 30% 가정)은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일·서울은행에선 이미 감자를 통해 6조원이 사라졌다. 결국 국민 1인당 120만~150만원은 짐을 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구조조정 어떻게 될까
공적자금 조성은 구조조정 완결과 시장안정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5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계획이 발표된 22일 주가가 폭락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재경부는 내달중 ‘공적자금 국회동의안 제출→금융지주회사법 처리→은행경영평가 완료→자력생존·공적자금 투입은행 선별’등 절차를 마무리짓고 금융구조조정의 대장정을 사실상 내달말까지 끝낸다는 계획. 그러나 국회정상화나 은행별 처리방안확정이 순조롭지 못한다면, 공적자금 조성만으론 시장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적자금 조성의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려면, 무엇보다 부실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식 책임추궁관행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공적자금은 고무줄?
공적자금 소요가 넉달만에 20조원, 조성규모는 40조원이나 늘어났다. 때문에 공적자금 산정은 ‘고무줄’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5월24일 공적자금 추가소요액을 30조원으로 전망하면서, “기존 64조원을 회수해 재활용하면 추가조성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추가소요액을 50조원, 국회동의가 필요한 추가조성액을 40조원으로 수정했다.
재경부는 공적자금 소요가 늘어난 이유로 대우차 매각차질 및 은행 충당금적립으로 7조원 은행 잠재부실정리에 8조원 종금 신협 금고등 2금융권 구조조정에 5조원 등이 새로 드러나게 됐다고 밝혔다. 반면 증시침체로 정부출자은행의 지분매각 등에 차질이 생기면서, 불가피하게 40조원을 조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이 마지막 공적자금이 되도록 대규모로 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5월의 공적자금 소요·조성 산정이 경직적이고, 눈앞의 책임회피식으로 이뤄졌음이 확인된 셈이다.
새로 드러난 공적자금 소요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농협에 대한 출자. 재경부 당국자는 “농협측으로부터 축협인수에 따른 부실정리를 위한 공적자금 요청이 있었다”며 “그러나 공적자금을 받으려면 신용-경제사업 분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협에 이어 또 한차례 파문이 예상된다.
산업·기업은행의 한국·대한투신 지분을 예금보험공사가 인수키로 함에 따라 한투 대투는 예보 자회사가 되며, 이 경우 예보 주도의 금융지주회사로 편입될 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공적자금 어디에 썼나
23개월간 110조 투입… 망할곳에도 수조원 낭비
지난 23개월동안 110조원에 가까운 공적자금이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됐지만 회생가능성이 없었던 금융기관에 조차 공적자금이 투입돼, 국민 부담만 가중시킨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일은행의 경우 5,000억원에 매각하면서도 3배에 가까운 15조4,400억원(2002년말까지는 17조3,000억원)이 투입됐고, 회생가능성이 없던 종금사 등에도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어디에 얼마나 들어갔나
1997년 11월부터 2000년 9월까지 23개월동안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 내역은 98년 국회 동의를 받아 채권 발행으로 조성한 64조원 64조원중 회수해 사용한 18조6,000억원 차관자금, 차입금 등 공공자금 27조원 등 총 109조6,000억원이다.
이중 은행권 구조조정에만 70조3,000억원(64%)이 사용됐다. 특히 미국 뉴브리지캐피탈에 5,000억원에 매각된 제일은행에는 지금까지 15조4,400억원이 들어간데 이어 풋백옵션(추가손실 보전)계약에 따라 2002년말까지 2조원 가량 추가로 투입될 전망이다.
서울은행의 경우 조기 정상화를 위한 증자지원 4조8,000억원, 부실채권 매입자금 3조원 등 총 8조1,100억원이 투입됐다.
또 한빛은행의 경우 상업은행과 한일은행간 합병과정에서 6조5,000억원이 들어갔고, 조흥은행·강원은행·충북은행 간 합병(이후 조흥은행) 과정에도 5조4,7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이와함께 대우사태 여파로 부실해진 투신사의 건전성 회복을 위해서는 출자지원 5조8,000억원, 부실채권 매입 6조4,000억원 등 모두 12조2,000억원이 공급됐다. 한국투신에 5조원, 대한투신에 2조9,000억원이 들어갔다.
▦투입과정, 문제는 없었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관에조차 공적자금이 낭비됐다는 지적이 많다. 대한·중앙·나라종금의 경우 98년초 영업정지됐다가 5월 유상증자를 실시한 5월 영업이 재개된뒤 11월 결국 퇴출됐다. 이 과정에서 각각 2,300억원, 1,200억원, 1,7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또 제일·신세계 종금 등 16개 종금사의 경우 부실채권을 9,200억원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지원했으나 이들 종금사는 모두 폐쇄됐고 회수 자금은 1,632억원에 불과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공적자금이란 무엇인가
공적자금(公的資金)이란 정부가 원리금 지급보증을 서고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채권(예금보험기금채권 및 부실정리기금채권)을 발행, 조달한 자금을 말한다. 정부가 빚보증을 선 일종의 보증채무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국민 세금은 아니다. 회수만 된다면 국민 부담은 전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만일 예금공사 등이 투입 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할 경우 채권 원리금은 정부 재정으로 메워야 한다. 즉,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정상화가 미뤄지고 회수가 어려워질 수록 결국 국민의 부담은 늘게된다.
포괄적 의미의 공적자금에는 이밖에도 국제금융기구 등으로 부터의 정부 차관자금, 예금공사 등의 금융기관 차입금 등 공공자금도 포함된다. 이 또한 회수가 제대로 안될 경우 국민의 부담이 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