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說話)문학. 듣기는 참 많이 들었다.임춘의 '국순전'에서부터 이규보의 '국선생전', 이인로의 '파한집', 어숙권의 '패관잡기', 성현의 '용재총화'까지 산문문학의 한 형태로 외우고 또 외웠다.
하지만 이 설화문학을 직접 읽어보거나, 설화집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난 달 31일 정년퇴직한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김현룡(65) 교수가 25년여의 연구결실을 맺었다.
박사학위논문 작성때부터 한문으로 기록된 우리나라의 문헌설화를 우리 말로 옮기기 시작해 최근 '한국문헌설화' 전 7권을 완간했다.
실려 있는 설화만 모두 3,550여개에 달하는 대작이다.
대상으로 삼은 전적(典籍)은 254종이다. 11세기에 씌어진 대각국사 의천의 '대각국사문집'서부터 1922년 '파수록'까지 다뤘으니 무려 1,000여 년에 걸쳐 편찬된 문헌들을 모두 모은 셈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비롯해 '고려사' '제왕운기' '보한집' '동국이상국집' 동문선' '용재총화' 등도 망라됐다. 책은 설화문학을 주제별로 분류해 각 권에 나눠 실은 다음 출전과 연구성과 등을 밝혔다.
제1권은 주인공의 품성과 지혜를 강조한 설화, 제2권은 입신과 처세, 제3권은 부인과 가정, 제4권은 애정과 기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5권은 불교와 귀신, 무격, 제6권은 선도(仙道)와 신이(神異), 몽사(夢事), 제7권은 동물과 해학과 전승에 관한 설화를 묶었다.
구전설화로도 알려진 '자린 고비'가 실제 문헌에는 어떻게 기록돼 있는 지 살펴보자.
저자는 조선시대 문필가인 유몽인(1559~1623)이 16, 17세기에 지은 '어우야담'에서 '고비'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낸다.
'고비(高蜚)는 충주 사람으로서 장사를 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 고비가 늙어서 재산 형성의 전문가로 소문이 나니 마을 사람들이 부자 되는 비결을 배우러 왔다.
고비는 한 사람을 성곽 위 언덕 밖으로 뻗은 소나무 가지에 한 손으로 매달리게 해놓고서 '재산 지키기를 저 사람이 소나무 가지 잡고 있는 손과 같이하라'고 말하고는 내려가버렸다.'
저자는 이렇게 원전에는 '고비' 앞에 '자린'이라는 수식어가 없었으며 이는 '자린'이라는 발음이 '소금에 절인'이라는 '저린'과 비슷해 혼동을 일으킨데다 '고비' 역시 '굴비'와 발음상 유사성이 있어 '소금에 절인 굴비'가 '자린 고비'로 음운착각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해석한다.
책에는 부부간의 야릇한 애정과 음담(淫談)에 가까운 성희(性戱) 이야기, 끊임없이 남자 주인의 성적 요구에 시달리는 여자 종 이야기 등도 실려있다.
저자는 1998년 8월 첫 출간한 제1권의 서문에서 "우리나라 문헌설화는 구전설화를 어려운 한자를 빌려서 표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하지만 감정이 풍부하고 애상적인 우리 민족의 성품을 알기 위해서는 설화만큼 좋은 교재도 없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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