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살의 어느 겨울, 아르헨티나의 한 의대생 에르네스토는 선배인 알베르토 그라나다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여행을 떠난다.그들은 굶주림과 추위를 무전취식과 노숙으로 이겨냈지만, 병마로 고통받고 있는 칠레 원주민 인디오들에게는 무력감만 느낄 뿐이었다.
페루에서 만난 사회주의자들로부터는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민중에게 빵을'이라는 구호였음'을 배웠다. 잉카문명에서는 제국주의 침략의 증거를 목격했다.
이 의대생이 바로 훗날 체 게바라로 불리게 되는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1928~67)이다.
'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이후 발행)는 청년의사의 길을 걷던 그가 1951년 12월 조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칠레,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쳐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8개월의 대장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여행 당시의 일기를 그의 두번째 아내가 정리해 스페인어판으로는 1993년, 영어판으로는 1995년에 출간됐다. 일기에는 '쿠바 혁명의 지도자'로 신격화되기 전의 체 게바라의 모습이 담겼다.
쿠바 혁명을 이끌 때나, 숨을 거두기 전인 볼리비아 밀림에서조차도 늘 그는 일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이 일기에다 당시 남미의 처참한 현실과, 인간의 질병을 넘어 사회의 질병을 치료해야 함을 깨닫게 되는 심정의 변화를 낱낱이 적고 있다.
칠레의 라 지오콘다에서 한 늙은 여자 천식환자를 진찰할 때의 일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무력감뿐이었다.
결코 내일 이상을 장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세계 곳곳에 있는 프롤레타리아들의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뿌리 깊은 비극을 본다.
정부는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계획들에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자해야만 한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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