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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나들이/ '孝子 정조' 숨결 느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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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나들이/ '孝子 정조' 숨결 느껴질 듯

입력
2000.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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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조임금은 역대 왕중 가장 효성이 지극한 인물로 지금도 널리 알려져있다.수원과 화성일대에는 정조임금이 뒤주에 갇힌 채 생죽음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각종 유적지가 즐비해있어 50년만에 만나는 남북이산가족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가족과 효도의 의미를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융릉·건릉 정조 13년(1789년) 당시 양주 배봉산(현 서울시립대뒷산)에 초라하게 묻혀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현재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일대로 옮기고 어머니 혜경궁홍씨와 합장, 융릉을 조성했다. 당시 정조는 단순한 묘에 불과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왕릉에 준하는 규모로 확장, 자신은 죄인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동시에 왕권강화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다.

융릉바로 옆에는 정조와 왕비의 합장묘인 건릉이 위치하고 있다.

화성(수원성) 정조는 융릉을 이장한 후 5년이 지난 1794년 화성군(현재의 수원시 포함) 일대 민가를 집단이전시키고 화성(수원성)을 조성, 2년만에 완공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5.52㎞의 이 성곽은 국내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우아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유엔이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정조는 당시 아버지의 묘와 가까운 이 곳을 도읍지로 지정, 당쟁의 회오리속에서 왕권강화를 도모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용주사 융릉을 화성으로 이장하면서 이들을 모시는 사찰로 설립한 곳으로 융건릉과 1.7㎞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당초 이 곳에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가 있었으나 병조호란때 소실됐으며 정조가 이 곳에 새로 절을 지으면서 용주사로 명명했다.

이 곳 대웅전에 있는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작품. 범종각의 동종(국보120호)은 상원사 동종과 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과 함께 손꼽히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수령 200년이 넘은 회양목(천연기념물 264호)도 볼거리다.

지지대비 정조가 융릉을 참배하고 환궁하는 길에 있던 고개길(지지대)에 세운 비석. 현재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있다. 멀리서나마 아버지를 더 보려는 마음에 이 곳에서는 늘 정조의 행차가 느려졌다고 전해진다.

효행공원 정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지대주변에 조성한 공원. 프랑스군 참전기념비 잔디광광 효행기념관 정조대왕동상 등이 있고 주변의 노송지대와 어우러져 가족나들이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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