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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 1,2권 / 패션의 변화를 통한 유럽의 문화사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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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 1,2권 / 패션의 변화를 통한 유럽의 문화사 고찰

입력
2000.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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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패션의 내재적 전개과정을 그린, 개별 분야 역사에 관한 일반적 개론서 정도로 여겼다면, 성실한 독자로서는 큰 실수를 범하는 셈이다.예컨대 이 책의 첫 장은 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어떻게 멸망을 자초했는지, 이후 기독교가 어떻게 세속적 지배권을 장악해갔는지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90페이지가 넘도록 패션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패션을 패션이란 틀 안에서 바라보는 단선적 시각 바깥에 있는 것이다. '호피무늬 밍크코트'를 둘러싼 옷 로비 파문까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미 100년 전 사회학자 베블린이 '유한계급론'을 통해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복식행위를 연관지어 파악했듯이, 패션은 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위에 촉수를 내렸다는 것이 상식이다.

패션의 촉수가 더듬은 역사란 어떤 모습일까. 역으로 인간의 역사는 패션의 지층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패션의 역사'(전2권, 한길아트 발행)는 바로 이러한 해석적 지평에 서 있는 책이다.

패션이란 기호를 둘러싸고 전개돼온 역사를 유럽 문화 전반의 관계 아래서 섬세하게 더듬어가며 조망해가는 것이다.

그 때 패션은 디자이너나 멋쟁이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역사와 밀착된 풍속이자 생활양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때문에 책은 패션의 역사라기보다 차라리 풍속의 사회문화사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이 책은 바로 독일의 저명한 문화사가 막스 폰 뵌(1860~1932)의 대표작 'Die Mode' 의 요약 개정판을 번역한 책이다.

뵌이 1907년부터 1925년까지 쓴 'Die Mode'는 패션 분야의 탁월한 고전으로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전 8권이란 방대한 분량으로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쉽지 않았다.

이점을 고려해 의상학자 잉그리트 로세크가 두 권으로 요약한 책을 이번에 번역 출간했다. 저자는 패션의 변천을 따라가면서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예술, 건축, 음식 등을 넘나들며 풍요로운 지식을 제공한다.

특히 돋보이는 점은 방대한 실증적 자료 더미에 파묻히지 않는 저자의 뛰어난 문화사적 통찰력이다. 예컨대 저자는 유럽에서 최초의 유행은 십자군 원정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한다.

십자군은 여러 민족이 모이게 해 양식과 의상의 '특수성'에 대한 시각을 열어주었으며, 도시에 사치를 가져다 주어 새로운 요구를 지닌 새로운 사회를 창조했다고 설명한다.

18세기 시민혁명은 패션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여성은 허리를 조이던 코르셋을 버리면서 신체를 자유롭게 했다.

자코뱅 독재기의 패션은 정치적 신념과 패션과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반영한다. 당시엔 아무도 감히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하지 못했다.

자코뱅에게 풀어헤친 머리스타일과 긴 바지는 신념의 징표였다. 오늘날의 '그런지 룩'처럼, 너저분한 스타일은 사고의 자율성과 독립성의 증거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역사의 큰 물줄기를 그려가면서도 사소한 일화를 흥미진진하게 제시하는 이 책은 역사 읽기의 재미가 뭔지를 제대로 알려준다. 천미수 옮김.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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