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최근의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주가 폭락, 유가 폭등, 반도체값 급락, 대우차 매각 무산 등으로 비틀거리는 우리 경제의 겉과 속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내리는 결론은 ‘단기처방보다 근본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아울러 아무리 선진시스템을 갖췄다 해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낡은 사고를 바꾸지 않는다면 한국적 신경제는 ‘연목구어’라는 게 이들의 따끔한 충고다.
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우리 정부의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 과정을 지켜봐온 두사람의 진단과 처방을 듣는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도미니크 바튼
최근의 경제위기는 정부의 구조조정 실행 의지가 상당히 축소됐다는 점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97년 10월과 같은 위기가 몇달 내에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근본적인 경제모델의 변화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18개월 내에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구조조정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인위적이고 성급한 데드라인을 설정한다면 국가 신인도를 추락시키는 결과만 초래하게 된다. ‘단기 처방’보다 ‘펀더멘털’에 충실해야 한다. 잠정적인 채권기금 조성 등으론 금융기관과 기업간에 얽혀있는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 수 없다.
기업들의 부실채권 처리가 우선 과제다. 정부는 더 많은 공적자금의 투여를 위한 자본재구성(recapitalization)이 시급하다. 1,0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정부가 지금 한 차례의 강력한 결단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 구조조정은 가장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3년간 변화한 것이 무엇인가. 부실기업들은 워크아웃, 혹은 청산돼야 한다. 금융기관들의 철저한 감시기능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기준 역시 철저히 준수돼야 한다.
금융부문은 신중하고 분명한 제2차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경영상태가 취약한 은행들에 대해선 부분적인 자본 확충보다 완전한 자본재구성이 요구된다. 금융기관 수 역시 더 축소될 필요가 있다.
■前 템플턴 투신운용사장 제임스 루니
문제의 핵심은 금융시장의 불안에 따른 신용경색이다. 쉽게 말해 직접금융 시장으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권엔 단기성 부동화 자금이 200조 가량 떠돌고 있지만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한 채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돈을 과연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 방향 감각을 잃었다. 이것이 시장에 대한 신뢰감 상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금융시장 불안은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문제점이 결합된 결과다. 특히 내부적으로 금융·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 구조조정은 하루 아침에 이뤄질 사안이 아니다. 돌출적 악재에 흔들리지 말고 더욱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부채비율을 낮추고 부실채권을 청산하는 등의 외형적 기업 개선은 영업 관행과 지배구조 개선 등 소프트웨어의 개혁없이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아무리 선진 시스템을 갖췄다해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습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최근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포기는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한국정부로선빠른 해결책이 최선의 방안이다. 더 지체한다면 대우자체 뿐 아니라 전체 경제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대우차가 1달러에 팔린다고 해도 이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시킬만한 한국기업은 현재 없다.
장학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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