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부동하던 대통령의 상황인식에 변화가 있음이 감지된 것은 19일 국무회의 였고. 그 주제는 "경제'였다. "안팎의 요인으로 경제가 불안하다. 국민과 정부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하자."그 이튿날 아침에는 한빛은행 부정대출압력 의혹의 중심에 놓였단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을 사퇴형식으로 전격 경질했다. 대통령 측근의 한 사람이고 '실세'로서 남북관계 '밀사'이기도 했던 그는 이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그의 희망대로 의혹을 벗기 위해서라도 진상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대출보증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그에 의해서는 "정치세력의 배후조종을 받아 마치 의적인 양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비난된 한 피의자와의 대질도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 피의자는 오랜 홍길동식 도피를 접고 예고했던 날짜인 21일 검찰에 출두했다.
같은 날. 야당은 부산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고 현 정부의 '국정파탄'을 몰아세웠다. 대출압력 의혹사건이 주요 공격 메뉴였음을 물론이다.
일련의 사태 전개 과정에서 지나칠 수 없는 하나의 관점이 있다. 대통령의 상황인식에 관한 논의가 여권 내부에서 돌출한 사정이다. 이른바 언로경색론이다.
초.재선 의원들의 '미완의 반란'의 줄에 섰던 한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은 신문사설을 매일 읽었다던데, 실제론 현재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19일의 의원총회에서는 한 중진의원이 "조선조 때보다 언로가 더 막혀 있다"고 직설했다.
대통령이 소수의 보고에만 으이존하는 등 균형잡힌 정보를 못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동료인 '소수'의 이름을 거명했다.
공동여당이기도 한 자민련이 여기서 거들었다. "대통령에게 언론가 막혀 있다는 게 국민의 소리다. 대통령 측든들은 대오각성하라."
이런 목소리들이 대통령의 막혔던 귀를 열고 언로를 트는 데 주효했다고는 믿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들이 여권 내부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뜻 있는 변화다.
그리고 실제 경위는 어떠했든 박지원 장관의 사퇴는 꼬일 대로 꼬인 정국에 한 가닥 해결의 실마리를 준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목소리'들의 배경인 총체적인 위기의식이다. 은행 부정 대출 압력 사건은 '위기'를 불어 온 여러 문제 중의 하나일 뿐이다. 국회법 날치기로 부터 비롯돼 선거비용 은폐 의혹으로 얽혀들어간 상극의 정국, 그 정국을 푸는데 무기력한 정치러더십에 대한 실망. 몇 달째 국민 건강을 담보로 계속되는 의약분업분쟁, 무엇보다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경제구조 개혁들을 보는 절망감과 초조감이 의기의식으로 직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추석 귀향에서 돌아온 민심은 때마침 밀려든 유가폭등 주가폭락 등 경제 악재들과 맞물려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정부의 허둥대는 대응은 그런 민심을 잠재울 만한 신뢰감을 잃은지 오래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바로 이같은 신뢰의 상실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현재 국민을 옥죄고 있는 난국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부터 믿음을 주기에 모자라는 모습이다.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도무지 '상황을 단단히 틀어쥐고'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세를 보기 어렵다.
국민에게 믿음을 주려면 난국돌파의 의지와 해결능력을 보여 주고 과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그리고 국민을 앞성서서 이끌기 위해서는 지금이 진정한 위기임을 솔직하게 구긴에게 털어놓은 용기가 필요하다.
"경제위기는 아직 극복된 것이 아닙니다. IMF는 또 올 수 도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의 비장했던 초심으로 돌아갑시다"라고 국민에게 말해줘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지닌 스스로의 정신적 가치, 국민의 정부를 갖게 된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연 '정권의 도덕성'이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가치와 자긍심은 지난해 옷로비 사건에서 올해 대출 압력의 혹으로 이어지면서 이미 산산조각이 나는 상황이다.
국민의 정부의 진정한 위기는 지금 무참하게 망가지고 있는 정권의 도덕성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대출압력 의혹에 아니 총체적 우기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너무나 자며하다. 국민으로 하여금 믿게 해야한다.
칼럼니스트 assisis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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