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월드워치] 냉전은 정말 끝났는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월드워치] 냉전은 정말 끝났는가

입력
2000.09.21 00:00
0 0

냉전종식에 세계가 안도한 지 1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념과 국익을 경계로한 강대국간 견제와 적대는 여전하다. 때로 냉전적 모략선전도 서슴지 않는다. 겉치레는 화해협력이지만, 냉혹한 힘겨루기는 변함없는 세상이다.지난해초부터 미·중 관계를 극도로 경색시킨 ‘중국 핵스파이’사건은 그 상징이다. 지난주 법원이 무리한 수사로 판정해 매듭지었지만, 처음부터 모략선전의 성격이 짙었다. 이 사건은 중국을 견제하는 힘겨루기와 여론몰이에서 중국의 부도덕성과 잠재위협을 부각시키는 데 좋은 재료였다. 특히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상정한 미사일방위체제 추진에 더없이 요긴하게 쓰였다.

로스앨러모스 핵연구소의 중국계 과학자를 ‘중국 스파이’로 몰고간 경위부터 황당했다. 먼저 권위있는 뉴욕 타임스가 사건을 특종보도한 다음날 FBI가 그를 전격체포, 충격효과를 높였다. 드러난 혐의는 보안규정을 어기고 기밀을 개인 컴퓨터로 다운받은 것 뿐이고, 이는 연구원들의 관행이었다. 그런데도 언론과 정부, 의회가 난리를 쳤고 무려 59가지 혐의를 씌워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기소장에 간첩혐의나 중국관련 여부는 언급조차 없었다.

결국 1년반동안 우여곡절끝에 미·중의 갈등이 누그러진 상황과, 허무맹랑한 스파이 사건이 흐지부지된 것을 무관하게 볼 수 없다. 클린턴 대통령과 언론, 중국 공격에 앞장선 공화당까지 뒤늦게 수사기관의 인종적 편견 등을 탓하고 있지만, 이것도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변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이 과학자는 중국아닌 대만 출신이다. 또 그가 80년대 후반 중국을 방문한 사실을 기밀유출 의혹과 연계시켰지만, 실제 기밀을 복사한 것은 93년부터다. 특히 97년 대만 핵연구소를 방문하기전 기밀을 대량복사, 대만에서 새 일자리를 얻으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사실을 외면한 스파이 조작은 ‘반중국 보수세력의 음모’라는 중국측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지난달 러시아 핵잠수함 침몰때도 냉전적 모략이 엿보였다. 원인모를 재난을 놓고 서방측은 근거없이 러시아의 비밀주의와 인명경시 등 온갖 ‘악덕’을 비난하는데 열올렸다. 엉뚱하게 푸틴 대통령의 위기까지 점쳤다. ‘미국이라면 핵잠함 사고를 즉각 공개하고, 적성국의 구조지원을 선뜻 받겠느냐’는 바른 소리도 나왔지만, 이것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실제 러시아는 8월12일 밤11시30분쯤 노르웨이·미국과 동시에 수중폭발을 감지한 직후 탐색에 나서 13일 저녁 침몰선체를 확인했다. 이어 다음날 아침 사고를 발표하고 구조를 서두르다 여의치않자 16일 서방지원을 요청했다. 특히 관련정보를 모두 공개, 해군 박물관 인터넷사이트(www.museum.navy.ru)에서 소상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서방에서도 전례없는 일이다.

이런 정황을 무시한 비난공세는 사고원인 논란과 관련있다. ‘강한 러시아’를 외치는 푸틴을 흔들려는 저의도 의심된다. 러시아 정부조사위원회는 미·영 핵잠함과의 충돌과 피아(彼我)어뢰 피격, 내부사고 및 폭발 등 11가지 가능성을 검토한끝에 충돌쪽에 무게를 두었다. 반면 서방은 어뢰폭발로 몰다가, 함께 훈련하던 순양함의 대잠미사일에 맞았다는 설을 퍼뜨리고 있다. 진상이 밝혀질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서방쪽‘선전’이 득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힘겨루기를 구경하는 우리의 자세다. 어느 한쪽을 편들어야할 계제가 아닌데도, 흔히 부화뇌동하는 것이 문제다. 핵잠함 사고때 러시아 전문가란 학자는 볼세비키 혁명세력이 니콜라이 2세 일족을 재판없이 학살한 것을 러시아의 오랜 인명경시 전통의 증거로 들었다. 러시아 언론은 그 니콜라이 2세를 인명을 짓밟은 폭군의 상징으로 꼽았으니, 분명 아이러니다.

냉전은 끝났다. 그러나 국제문제를 냉전시대의 편향된 시각으로 보는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냉전적 인식의 틀을 깨야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