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4 동점. 김영호의 머리속에는 온통 ‘마지막 불만 켜자.’는 생각 뿐이었다. 이어 홀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세살배기 아들 동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마음 한 구석에는 국제대회 14-14 상황서 자주 패해 ‘뒷심이 약하다’는 징크스가 고개를 치밀었다.
곧바로 심판의 ‘알레(Allez. 시작)소리가 이어졌다. 선제공격으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쿠페(위에서 내려찌르는 공격방법)밖에 없어.” 비스도르프의 공격에 앞서 김영호는 쿠페를 시도했고, 세계최고수준의 쿠페는 결코 빗나가지 않았다.
김영호는 마스크를 벗어제치고 오른 주먹을 불끈 내지른 뒤 김헌수 감독을 얼싸안았다.
김영호가 한국펜싱 역사상 첫 금메달을 따는 과정은 가히 극적이었다. 2라운드 중반 9-9 동점을 만든 김영호는 잇달아 2득점, 11-9로 앞선채 2라운드를 끝내 금메달이 손에 잡히는 듯 했다.
3라운드 초반 12-10, 13-11로 앞서나가다 36초만에 14-11로 매치포인트를 만들어놓자 한국응원단을 지키던 한성욱 전대표팀감독은 금메달을 확신한듯 “이젠 해낸거 같다”며 감격해했다.
그러나 곧바로 1점씩 허용할때마다 한 전감독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구 돌아야지, 아이구’ ‘아아아아’라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관중석을 지키던 이상기 주장 등은 발을 동동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시드니=특별취재반
■경기초반 1-3으로 리드당하다 1라운드가 끝날 무렵 5-5 동점을 만든 김영호의 뇌리에 “이대로는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호는 독일의 랄프 비스도르프가 70%이상 결승상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3개월간 하루 200~300번씩 연습해온 ‘아타크(손을 뻗는 공격기술)’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타크’란 공격시 칼을 든 손을 쭉 뻗어 상대가 칼을 치면서 공격해들어와야 하는 거북한 동작이다. 즉 김영호의 작전은 상대 공격시 재빨리 칼을 뒤로 빼 찔러서 포인트를 따내는 것이었다.
김영호는 세계랭킹 1위이자 6월말 쿠바 하바나에서 열린 2000하바나그랑프리대회 8강전서 13-15로 패한 바 있는 비스도르프를 꺾기 위해 남모르게 비장의 무기를 준비 한 것이다.
김영호의 준결승전과 결승전 작전이 다른 것도 이런 이유였다. 준결승 상대인 드미트리 체브첸코(러시아)는 스피드가 느려 공격적 플레이를 해야 했지만 비스도르프는 키(188cm)가 크고 리치가 워낙 길어 변칙적인 공격을 해야 했다.
비스도르프로서는 김영호가 이런 작전을 들고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허를 찔린 것이다.
14-11로 리드하다 14-14로 동점을 내주자 주변에서 우려가 많았지만 김영호는 침착하게 비스도르프가 공격하기전에 주특기인 쿠페를 성공시켜 금메달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뒷심이 약하다는 징크스를 깨는 순간이었고 3개월간 자나깨나 ‘타도 비스도르프’를 머리속에 그린 작전의 승리이기도 했다.
/시드니=특별취재반
■국내 플뢰레선수 고작20명 '기적같은 금'
국내서는 펜싱대표선수를 위해 훈련파트너를 구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1,000여명의 선수가 있지만 플뢰레로 뛰는 선수가 20여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펜싱 플뢰레 개인전의 금메달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에 비유할 만하다.
경기현장에서 만난 외국기자가 두 가지 질문을 건네왔다. 한국에는 펜싱선수가 몇 명이나 되느냐는 질문과 김영호의 금메달이 첫 금메달이냐는 것이었다. 기자가 대략 1,000여명 내외라고 답변하자 독일기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김영호가 “시상식 단상에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두번이나 꼬집어봤다”는 말은 척박한 환경의 한국펜싱이 불가능을 현실화시켰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