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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 위기에 국회는 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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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 위기에 국회는 뭘 하나

입력
200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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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의원님들께 고언을 드리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회는 입법기능을 가진 국민의 대표기관이라고 배워왔다. 어디 금배지의 위상이 이것 뿐인가.정부를 통제하고 면책특권을 누리며 어디서나 큰 소리 칠 수 있는 권한을 향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의원님들은 자신이 스스로 헌법기관이라고 자처한다. 선거로 뽑힌 공직이니 그만한 자부심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 의회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도 없는가. 그 높은 신분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어디서도 찾아볼 길이 없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사류(四流) 정치'라고 치부하며 잊어버리고 싶어하지만, 제 기능을 상실한 국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심각하니 정치에 문외한인 경제학자도 한마디 안 할 수 없다.

우리 경제는 아직도 중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의 부실도, 기업의 구조조정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유가는 급등하고, 포드가 버린 대우자동차도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주가는 연일 폭락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경제주체가 혼연일체가 돼 힘을 합해도 살아나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급변하는 외부요인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시급히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와중에서 국회는 무얼 하고 있는가. 경제회생을 가로막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벌써 몇 달째 경제현안이나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政爭)만 일삼고 있지 않은가. 여든 야든 핑계야 많겠지만, 국민들에겐 여의도의 큰 무덤밖에 보이지 않는다. 금융시장의 안정과 구조조정을 위한 지주회사법안은 물론이고, 공기업의 민영화, 공적자금의 조성 등 긴급한 현안이 묻혀있다. 대우중공업의 정리도 몇 달째 계류되고 있다.

선량(選良)들이 스스로 부르짖는 소외계층의 지원도 공염불이다. 구조조정을 위한 입법은 경제위기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의약분업이 몇 달 째 표류상태에 있어도 국민의 대표는 말이 없다. 도대체 국회가 열려야 가타부타 논의가 될 것 아닌가.

우리 경제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의 여유가 없다. 앞으로 몇 개월을 잃게 된다면 다시 수렁에 빠질 수도 있는 절박한 순간에 있다. 이번 만이라도 국회가 신분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수십년간 쌓여온 국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기야 국회가 열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겠는가. 영국인들은 의사당 불빛을 보고 안심하며 잠이 든다지만, 우리는 불이 밝혀져 있어도 불안하기만 하다. 열려 봤자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겨우 열린 국회가 법안을 기습처리하거나 정쟁(政爭)의 수단으로 악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하루 아침에 오래된 폐습을 버리기 아쉽다면 이번 기회에 최소한 한 두 가지 원칙이라도 세워두도록 하자. 첫째, 경제현안을 정쟁으로부터 분리하자. 경제입법은 처리가 늦어질수록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부실기업의 처리는 물론 공적자금의 조성이나 조세감면이 며칠만 늦어져도 수 천억원의 국민부담이 늘어나지 않는가.

둘째, 민생법안은 처리기한이라도 규정하자. 그래서 일정기한이 지나도 입법화하지 않으면 의원님들께 과태료나 벌금이라도 부과하자. 처리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민원이 없지 않은가.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경제가 어려울 때는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회의 입법과정을 거쳐야 하니, 법치의 덫에 걸려 있는 국민의 모습이 서글퍼 보인다. 국민들의 경제적 불행이 선량들의 행복이라도 된단 말인가. 제발 국민의 부담을 볼모로 정쟁을 일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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