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여론을 따르겠다는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김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서 죄가 드러나면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민주당 내에서조차 사퇴론이 비등한 현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정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박 장관이 사퇴해서는 안된다는 게 김 대통령의 생각이었으나 더이상 여론을 거슬러가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박 장관이 자연인의 자격으로 수사를 받음으로써 검찰 수사에서 박 장관의 결백여부를 판가름내겠다는 고려도 했을 법하다. 박 장관의 사퇴로 대치정국의 숨통을 트겠다는 기대도 있는 듯하다.
청와대의 관계자들이 “납득되지 않더라도 여론과 현실을 따라야할 때도 있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불가피한 수용의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김 대통령의 정국해법에 큰 변화가 있을 여지는 적다. 청와대나 민주당이 박 장관 사퇴 이후 한나라당의 특검제 요구를 일축하고, 역으로 한나라당의 등원을 압박한 데서도 기존 입장을 고수하려는 기류가 읽혀진다.
그러나 박 장관 사퇴가 마지노선일지는 불확실하다. 검찰 수사의 결과가 가장 큰 변수며 이에 따른 여론의 향배도 중요하다. 또한 한나라당이 검찰 수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국회 정상화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정국의 흐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 여권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사퇴한 이상, 카드를 찔끔찔끔 쓰지 말고 일괄해서 난제들을 해결하자”는 조기타결론도 나온다. 일괄타결이 반드시 특검제 수용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열린 마음’으로 야당과 심도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적다. 특검제 수용이검찰 등 공권력의 골간에 상처를 내고 야당의 파상공세가 ‘정권흔들기’라는 파당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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