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습니다... 오래 살 만한 사람이었는데..."고 황순원 선생의 부음을 듣고 두 차례 미당 서정주 선생을 찾아뵀다. 미당은 황선생ㅇ과 동갑. 1915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여든 여섯이다. 그는 황선생의 부음을 전하자 "서럽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꺼칠한 수염에 깡 마른 얼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국소설사의 검고이 떠난 마당에 살아있는 한국시사의 어른에게서 추모시를 받아보려던 기자의 부탁에 미당은 "이제 시가 안써져"라며 완곡하게 거절 아닌 거절을 했다. 그러면서 " '황고집'은 내 심우였어, 깨끗한 사람이었어"라고 덧붙였다.
18일 오전 황선생의 영결식이 서울대병원에서 있었다. 피천득, 구상 시인등 문단의 원로들을 비롯해 150여 명의 후배 문인들이 참석한 영결식에서 박이도 시인은 추모시를 낭송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빛지지 않고/ 떠나시는, 단아하고 고고한 모습이/.../스승께서는 보여줄 수 엇ㅂ는 참 자유의 정신을/ 문학으로 일깨워 주셨습니다."
평소 소설과 시 쓰는 것 이외에는 잡문 한 편 허투루 쓰거나.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서는 것조차 꺼려했던 고인이 ㅈ구음으로 다시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것은 그가 남긴 이런 말이다. "나 자신의 편안함이나 금전을 위해서 내 마음속에 있는 독자에게 실망을 준 작품을 쓴 적은 없다 앞으로 다시 소설을 쓰게 되더라도 그런 타협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남기고 싶은 한 마디 말이 있다면 각자 모두 한눈 팔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말 뿐이다."
고인의 '마음 속에 잇는 독자'인 우리는 과연 그 기대에 값할만큼 생을 살고 들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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