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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에서 솟아나는 예술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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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에서 솟아나는 예술영감

입력
2000.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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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 조성이 국내 미술계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미국이나 프랑스의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다.매년 1명씩 문예진흥원의 후원으로 참가하는 뉴욕의 '현대미술연구소의 PS 1프로그램'을 비롯, 최근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아트페이스' (ArtPace) 에는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기획자로 선정돼 현지에서 박이소씨와 함양아씨의 전시회(10월 16일까지)를 개최 중이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란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 작가들이 일정기간 체재하면서 거기서 얻은 체험을 창작활동에 활용케하는 제도이다.

늘 변화를 추구하며, 동시에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을 원하는 작가들에게 이질적인 문화권에 머물며 작업하는 기회는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창작의욕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95년부터 시작한 '아트페이스'는 미국 전역 300여곳이 넘는 레지던트 아티스트 프로그램 중에서도 참신한 제도 운영으로 눈길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우선 '게스트 큐레이터' 라는 제도를 도입, 작가 뿐 아니라 큐레이터에게도 전시기획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자체적으로 작가를 선정하는 여타 창작 스튜디오와 달리 아트페이스는 전시 경력등 자료를 통해 먼저 큐레이터를 선정, 큐레이터가 작가 추천에서 전시 기획까지 맡도록 하고 있다.

선발된 작가는 두달간 이곳의 스튜디오와 아파트를 제공받으며 여행경비, 생활비, 작업제작비 등을 지원받게 된다.

작가는 한 사이클마다 세명씩 선정되는데, 아트페이스측은 텍사스주, 미국의 그외 지역, 해외작가로 구성하도록 권하고 있다.

두달 입주 후, 작가는 한달간 자신의 작품을 같은 공간에서 전시하게 된다.

김선정씨는 홍익대와 미국 프랫인스티튜트 출신으로 98년 대만, 97년 광주 비엔날레에 각각 참가했던 설치미술가 박이소와 서울대미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활동 중인 함양아, 그리고 텍사스대학 출신의 샌안토니오의 작가 다리오 로브레토를 선정했다.

7일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작가들이 두달 간의 작업을 끝내고 전시회를 개막하는 날이었다. 샌안토니오 지역 주민은 물론 휴스턴, 오스틴 등에서 몰려온 관객들은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환호했다.

박이소는 스튜디오 공간에 벽을 새로 세우고, 일부분을 다시 허물어 바닥에 무너뜨린 다음, '아트페이스' 옥상에 카메라를 설치, 여기서 얻은 비디오 이미지를 이 부서진 벽에다 투사하는 설치작품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깔고 내려다본다는 역전된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때로는 파랗게, 때로는 구름 가득한 하얗게 변화하는 하늘은 정처없이 떠도는 인간의 유한한 삶을 표현한다" 고 말했다.

함양아는 '몽유도원' 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꿈을 비디오 작업을 통해 현실로 옮겼다. 5년 넘게 미국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머리에 남아있는 한국의 자연풍광과 꿈속의 이미지를 꼴라쥬로 합성해 잊혀져가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그는 "기억의 단편을 되새겨보면서 시간과 공간과의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고 밝혔다.

현지 작가인 다리오 로브레토는 공룡 뼈를 절편으로 잘라, 그 속에 밥딜런의 음반을 녹여 채워넣는 등 미국의 팝 문화를 조각작품으로 변용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아트페이스 디렉터 캐드린 칸조는 "각국의 작가들이 만나 서로 다른 세계를 교환하게 해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창작 활동을 창의적이고 풍성하게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3회 광주비엔날레의 초청작가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흑인작가 글렌 라이곤 등 이를 거쳐간 작가만 해도 50여명이 넘는다.

젊은 신진작가들은 이 스튜디오를 거친 후 세계미술의 무대 뉴욕에서 주목받는 작가대열에 속속 올라서고 있다.

서부영화 '알라모' 의 무대였던 조그만 도시가 이제는 새로운 예술의 발신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샌안토니오=송영주기자

yjsong@hk.co.kr

■아트페이스 설립자 린다 페이스

"아시아 큐레이터에 많은 기회줄 것"

아트페이스의 설립자인 린다 페이스(55)는 "큐레이터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면서 "뿐만 아니라 작가 추천, 지원서 제출 등 3념 넘게 걸리는 작가선발과정을 단축하고 신속하게 새로운 작가를 추천받을 수 있다"고 큐레이터를 통한 작가 선정방식 채택 배경을 밝혔다.

그는 "요즘 비엔날레를 관람할 때 작가보다는 큐레이터가 누구인지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며 점점 미술계에서 높아지고 있는 큐레이터에 대한 비중도 아트페이스의 새로운 운영 방향과 무관하지 않음을 밝히면서 "특히 아시아큐레이터에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입주작가들이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면서 "두달간은 작품에 대한 연구나 실험을 하는 과정이며 작가들이 이러한 과정을 함께 체험하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아트페이스는 외부후원 없이, 그가 매년 내놓는 120만달러(13억원)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작가들에게 작품기증 같은 것은 요구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살사소스 제조 회사를 통해 큰 부를 쌓았고 저는 이를 젊은 현대미술작가들을 위한 새로운 미술문화의 인프라 구축에 사용하고 싶을 뿐입니다"

샌안토니오의 최고 갑부이자 미술품 컬렉터이기도 한 그는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오늘날의 이슈를 작품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저는 예술가를 현대사회의 철학자로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왜 그가 현대미술에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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