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중 무료함을 달래려고 우연히 서가에서 뽑아든 책이 황순원 선생의 ‘카인의 후예’였다. 학창 때 읽었지만 너무 감동이 진해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이었다.두번째 읽고 나서, 구약 창세기의 인물 카인처럼 친족을 죽인 사건이 나오지 않는데 왜 작품의 표제가 카인의 후예인지, 구체적으로 누구를 악인의 상징으로 설정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젊은날의 독후감이 떠올랐다. 마지막 장을 덮은 날 순원선생 부음이 전해진 것도 우연이었을까.
■일본 군국주의 압제의 사슬에서 벗어난 기쁨도 한 순간, 소련군이 진주하고부터 북한에 몰아닥친 변혁의 회오리는 기득권 계층에겐 너무 거세었다. 소련을 등에 업은 새 권력이 토지개혁이란 이름으로 지주들의 재산과 목숨을 마구 빼앗은 폭력은 나약한 지성인(주인공 박 훈)에겐 불가항력이었다.
마름의 딸인 오작녀와의 인연 때문에 파멸을 일시 유예받은 훈이 마름의 악행에 절망한 끝에 월남전야 그에게 칼부림한 것만을 카인에 비유하지는 않았으리라.
■지주에게 충직했던 허물을 벗어 던지려고 훈을 해치려던 마름이 아들의 반발에 부딪쳐 아들에게 낫을 휘두른 행위는 카인에 비유되어 마땅하다. 그렇다면 악인은 마름 한사람 뿐인가.
그를 피수탈 계층의 대변자로 조작해 이용하다가 가치가 없어지자 헌신짝처럼 내던진 당시 북한 지배층도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다. 경위야 어떻든 농민들의 피땀으로 재산을 축적한 지주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다면, 사익에 눈먼 사람들 모두를 카인의 후예라 지칭한들 반박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남북으로 갈린 두 계층 사이에 50여만에 화해 분위기가 자라고 있다. 남쪽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인민군 대장이 남쪽 지도층에게 주는 송이 선물을 들고 오고, 경의선 복원공사 삽질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화해의 기류를 거스르려는 움직임도 꿈틀대고 있다.
특히 정치적 반대자 세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반대하는 서명운동까지 펴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어제 문학인들의 애도 속에 천안땅에 묻힌 작가가 왜 우리 모두를 카인의 후예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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