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 도둑이 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현관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고 방마다 남의 흔적이 역력했다. 가난한 학자의 집에 값나가는 게 있으랴마는 근 20년간 함께 살며 기념일 때마다 조촐하나마 내 정성을 담았던 아내의 반지며 귀걸이 등 장신구 서랍을 고스란히 털어 갔다.어려운 유학생 시절 장학금을 모아 마련했던 작은 약혼 다이아몬드반지를 비롯하여 깜짝선물로 내가 혼자 산 것, 세계 이곳저곳을 함께 여행하며 예쁘다고 같이 산 것 등 너무나 많은 추억들을 깡그리 앗아가 버렸다.
조서를 꾸미던 경찰관은 추석을 앞두고 이런 일이 종종 있노라 한다. 동네가게 아주머니도 예전보다 좀도둑이 부쩍 늘었다 한다.
“도적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치는 아니하려니와”란 잠언 제6장 30절의 말씀으로 마음을 다스려야할 것 같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소득에 무려 5배가 넘는다고 한다. 정부는 IMF 위기를 넘겼다 하나 실제로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듯싶다.
부의 고른 분배는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어떤 체제든 완벽하게 평등한 분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들의 경우 적절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 나왔다. 이른바 ‘비대칭 이론’(skew theory)에 따르면 한 수컷이 모든 암컷들을 혼자 독차지해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후궁을 많이 거느리기로 유명한 북방코끼리바다표범 수컷들도 기껏해야 100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릴 뿐이다.
3,000 궁녀는 허상일 뿐이다. 붉은큰뿔사슴 총각들은 종종 떼를 지어 다른 수컷들의 영역으로 쳐들어가 폭동을 일으킨 후 암컷들을 훔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때 구슬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었다. 1960년대만 해도 설탕이 귀하던 시절이라 명절 때면 하얀 설탕이 가득 든 둥근 양철통들을 서로 선물로 주고받곤 했다. 나는 한 때 그런 양철 설탕통 대여섯 개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구슬을 가졌던 구슬재벌이었다. 수전노 돈 긁어모으듯 동네 구슬을 몽땅 따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무도 더 이상 구슬놀이를 하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나만 빼놓고 친구들은 모두 다른 놀이로 옮겨간 것이다. 생각다 못한 내가 친구들에게 각각 구슬 100개씩을 거저 나눠준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못 이기는 척 나와 놀아주었다.
비대칭 이론에 따르면 적절히 베풀어야 베풀 수 있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가진 이들은 너무나 베푸는 일에 인색하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서양의 거부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들이 천성적으로 남에게 베풀 줄 알아서가 아니라 베풀지 않으면 그들의 기반이 밑바닥부터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미국 LA에서 일어난 폭동 때 흑인들이 집중적으로 약탈한 민족도 바로 우리 한인들이었다. 움켜쥐기만 하다보면 전부를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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