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뜀틀계를 주도했던 한국체조의 간판스타 여홍철(29.대산기업)이 끝내 올림픽 금메달의 한(恨)을 풀지 못하고 국가대표를 은퇴한다.여홍철은 16일 올림픽 슈퍼돔에서 열린 남자 종합 예선 뜀틀에서 자신의 주무기 쿠에르보 더블 턴(몸 펴 2바퀴 반 비틀기)을 시도했으나 '착지불안'으로 9.687의 저조한 점수를 받고 11위에 그쳐 8명이 겨루는 결선진출에 실패했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뜀틀에서 한국체조사상 첫 올림픽 은메달을 안긴 여홍철의 시드니 충격은 끝내 국가대표 은퇴로 이어졌다.
여홍철의 19년 선수생활은 그야말로 가시밭길 같은 험난한 역정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체조에 입문한 그는 중학교 1학년, 왼쪽 팔꿈치에 관절염이 생겨 체조를 그만 둬야 할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치료와 훈련을 병행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국내 일인자였던 국가대표시절에는 91년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후배 유옥렬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유옥렬의 조기은퇴에도 여홍철은 인내심을 발휘, 한국체조의 희망으로 우뚝섰다.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96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이르기까지 한국체조의 자존심으로 군림했다.
그는 자신의 독자적인 기술 세가지 모두를 국제체조연맹(FIG)의 승인을 통해 '여(YEO)1'(쿠에르보 1바퀴 반), '여2'(쿠에르보 더블 턴), '여3'(손 옆으로 짚고 돌아 뒤로2회전) 라는 국제공인 기술명칭으로 인정받을 만큼 뜀틀에 관한 한 '독보적'위치를 구축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체조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금메달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그는 "이주형 등 후배들이부디 금메달을 따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말로 은퇴소감을 대신했다.
/시드니=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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