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방한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당초 반대 입장을 바꿔 11월 방한을 허용할듯 하더니, 중국 정부의 강력한 경고에 다시 방침을 변경해 ‘자주외교’시비가 재연될 조짐이다.정부가 처음부터 분명한 방침을 밝히고 일관된 태도를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사안 자체가 미묘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외교적 이해가 걸린 문제여서 원칙론만을 내세워 논란할 일은 아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자체가 갖는 의미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나눠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느쪽이 더 중요하냐는 차원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아우르는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현실외교의 이해때문에 명분을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명분을 위해 중대한 외교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다.
달라이 라마는 세계 여러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명이다. 특히 그가 상징하는 티베트 불교는 그 순수성과 깊이 등이 서구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우리 불교계와 대학생 등이 그를 초청해 높은 정신세계를 엿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를 논하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여느 종교 지도자와는 다른 지위와 상징성을 갖고 있다. 티베트의 최고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던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동서 냉전이 그 바탕이다.
1959년 그가 중국의 압박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한 사건이 세계적 뉴스가 된 것은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란 존재가 그만큼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티베트는 분명 중국에 의한 병합위기에 처한 소수 피압박 민족이지만, 독립국가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중국이나 옛 소련의 여러 소수민족의 경우와 비교하면 한층 분명해진다. 중국 봉쇄에 몰두하던 미국과 서방은 티베트의 운명을 냉전 선전전에 이용하기 위해 그의 망명을 유도했고, 그를 공산 압제에 맞선 투쟁의 상징으로 부각시킨 측면이 많다.
냉전대결이 완화하면서 달라이 라마의 도덕적 상징성, 반공 지도자로서의 위상은 크게 퇴색했다. 그를 폄하해서가 아니라, 과장된 이미지가 많이 제거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초청하기 위해 중국과 외교적 갈등을 무릅쓸 만큼 실익이 있는가를 냉정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난 수십년간 중국의 대내외 정책에 달라이 라마가 차지한 위치를 생각하면, 중국이 그의 방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형식적으로는 아직 중국의 주권에 도전하는 망명정부 지도자인 그를 굳이 초청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중대한 비우호한 행위로 볼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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