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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칼럼] 민심은 논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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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칼럼] 민심은 논리가 아니다

입력
2000.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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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갑갑하다. 앞이 턱 막혀 어쩔 줄 모르고 헤매는 형국이다. 요즘의 우리나라는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고 속 시원하게 진전되는 일도 드물다. 14일 타계한 황순원씨의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첫 문장처럼, ‘이건 마치 두꺼운 유리 속을 뚫고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같은 느낌’이다.의약분업문제는 석 달이 넘게 난리를 치고 있고 한빛은행 대출외압의혹에 대한 검찰과 정부당국자들의 언급은 국민의 화만 키운다.

잇따른 태풍으로 한 해 농사가 망가졌는데, 주가폭락에 기름값을 비롯한 각종 물가는 폭등하고 대우차 처리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기국회는 개회됐지만 국회의원들은 열심히 놀며 세비와 상여금을 잘도 챙기고 있다. 민심이 흉흉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내면 진정효과가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국민이 올림픽 메달로 흥분하고 감격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한 가지 진전되는 것이 있다면 남북관계인데 이마저 의구와 불안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6·15선언 3개월이 지난 지금 남북접촉의 틀을 살펴 보면 북한은 제 멋대로이고 우리는 질질 끌려 다닌다.

북한은 아무런 통보나 설명도 없이 각종 접촉과 회담일정을 바꾸거나 늦추는데 정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남북한은 올림픽개막식에서 동시입장을 해 세계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북한과 숫자를 맞춘다고 우리 선수단 중 90명만 입장케 하고 나머지 194명을 배제한 것은 우스운 일이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입장하는 터에 굳이 숫자를 맞추지 말고 다 참여시켰더라면 ‘한반도국’의 선수단이 더 많아져 보기에 좋았을 것 아닌가.

우리 돈으로 한반도기와 유니폼을 긴급제작해 보내고도 이런 식이다. 김용순비서가 왔을 때도 무엇이 그리 급해 오후 늦게까지 붙잡고 절충하면서 밤중에 돌려보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게 일방적인 북한에 대해 외국에서 쌀을 사서까지 지원해줄 필요가 있는가. 요컨대 이같은 일련의 현상은 정부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바꿔 말하면 실적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해 정부당국자들이 그게 아니라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도 국민은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어느 시대이든 민심은 논리로 구성되거나 합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태의 본질과 이면을 꿰뚫는 민심의 힘은 본능적일 만큼 빠르고 정확하다. 그런 점은 추석민심으로 확인됐고, 그 추석민심은 전국을 대이동·순환했다.

민주당 초·재선의원들이 모임을 갖고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민주당 중진 조순형 의원이 성명을 통해 한빛은행사건에 대한 원점 재수사나 특검제 도입등 6개 항을 공개 건의했다.

다 민심변화의 힘이라고 봐야 한다. 여권 내의 새로운 기류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기자들에게 초·재선의원들의 모임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치지도자는 미풍이 불고 있을 때 그 바람이 태풍의 전조인지 단순히 지나가는 미풍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정치인이지만 그의 말은 모처럼 옳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나 청와대수석들을 비롯한 보좌진의 현실인식은 민심과 많이 괴리돼 있다.

그것이 답답하고 갑갑한 점이다. 잘한 것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피려 하지 않고 국민이 뭘 모른다고만 생각해서는 오늘의 이 답답한 나라꼴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답답하고 갑갑한 사태가 만에 하나, 일부의 우려와 지적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의식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운영이나 남북접촉에서의 완급과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남북관계는 6·15선언으로 큰 줄기가 잡혔으니 서두르지 말고 추진해야 하며 ‘골치 아픈’ 내정은 민심을 잘 읽어 국민이 납득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먼저 한빛은행사건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재수사에 특검수사, 청문회까지 거쳤던 옷로비의혹사건의 재판을 만들어서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편집국 국차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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