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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김수영이 추구한 자유

입력
2000.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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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영 시인이 9월의 문화 인물로 정해지면서, 그가 추구한 문학세계가 자주 조명되고 있다. 김수영의 시적 주제가 자유라고 갈파한 이들은 많다.확실히 그처럼 자유에 대한 사유를 많은 시로 표현한 시인도 드물다. '푸른 하늘을' 도 자유를 노래한 많은 시 중 한 편이지만, '혁명' '고독' 등 예사롭지 않은 말과 연결되면서 인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부분) 그러나 평론가 고 김현은 김수영이 '엘뤼아르처럼 자유를 그것 자체로 노래하지는 않는다' 고 지적한 바 있다.

김수영은 자유를 시적ㆍ정치적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는 것이다.

김현의 김수영에 대한 평론적 통찰은

등의 시구에서 확인된다.

김수영은 훌륭한 시인이기도 했지만, 김현 못지않게 탁월한 평론가이기도 했다. 지금도 자유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김수영의 시적 태도는 '지성인으로서의 기저에 신념이 살아있어야 한다' 는 말로 요약할 수도 있다.

신념의 시는 혼란한 시대에도 굳건히 대지에 발을 붙이고 힘차게 일어설 수 있는 구원(救援)의 시를 낳으며, 진정한 모든 시는 구원의 시라는 것이다.

그가 1968년 귀가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47세로 타계한 것은 우리 시와 평론에서 참으로 큰 상실이었다. 자유를 향한 그의 문학적 모색은 4ㆍ19 혁명으로 확장되었고, 5ㆍ16 군사쿠데타로 인해 위축되었다. 그가 1962년에 쓴 시 중에 '전향기' 라는 작품이 있다.

^

라고 '전향기' 는 시작된다. '전향기' 를 읽으면서도 나는 그가 '좌경' 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유와 시적 표현은 그의 도저하고 광범한 자유에의 모색 속에 자리잡은 하나의 곁가지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전향기' 를 읽으면서 마침 떠올리게 되는 것은 지난 2일 북으로 떠난 비전향 장기수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겠다는 전향서를 쓰지 않고 고집스레 버티었다.

대부분 70세를 넘긴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은 빨치산이나 남파 간첩 출신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대가로 평균 30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냈으니 참으로 역사의 대가는 가혹하기만 하다.

그들은 운 좋게 북행을 이루었지만,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 전까지는 자신들의 북행 희망을 꿈꾸기 어려운 채 막막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들의 북행을 보며 343명으로 집계된 국군포로와 453명의 납북자도 남으로 와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상호주의를 따지지 않더라도 당연한 주장이며 기필코 이루어져야 할 사안이다. 남이든 북이든 이념적ㆍ정치적으로 빚어진 불행은 휴머니즘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 송환을 보면서 한 시대가 끝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한 시대' 란 광신에 가까운 신념과 열정, 애증, 몰입, 자기희생의 시대였다고 생각된다.

지식인부터 평균인까지 크든 작든, 또한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가 썰물처럼 퇴조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방북 사실 때문에 망명생활도 하고 옥살이도 한 작가 황석영은 최근의 한 산문에서 "통일로 가는 길 위에서 이제는 정말 좌경, 우경 하지 말자" 고 당부하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행을 보며 문득, 그들이 허상에 사로잡혀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투철했기 때문에 전향을 거부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가족이나 고향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 때문에 새로운 삶과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가족과 고향을 찾아 엄청난 교통장애와 시간낭비를 마다 않고 한사코 귀성하는 민족의 추석 행렬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합리적ㆍ정치적ㆍ주지적 성향보다는 충동적ㆍ낭만적ㆍ주정적 성향이 강한 민족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신념에 투철하던 시대가 끝난다고 무(無)신념의 시대가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타인의 신념과 사상, 새로운 모색이 보다 넓게 인정되고 존중되는 시대가 도래해야 하며, 그것이 본격적인 탈냉전 시대의 시작일 것이다. 그 점이 김수영이 추구한 자유와 견주어 보게 한다

/박래부 편집국 부국장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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