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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섭기자의 음식세상 /한식, 언제까지 손맛에만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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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섭기자의 음식세상 /한식, 언제까지 손맛에만 의존?

입력
2000.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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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은 손 맛'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음식은 만드는 이의 손 끝에서 나오는 솜씨에 의해 맛이 좌우된다는 뜻이다. '며느리도 모르는' 시어머니의 장 맛 역시 손 끝에서 나온다.눈썰미와 어림짐작만으로 재료를 배합하고 양념을 하는 것 같은데 만들고 나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맛내기의 내력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손 맛'을 필생 동안 눈썰미 하나로 배우고 익힌다. 우리네 '손 맛'은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다.

한국인에게 '손 맛'은 서양식 레시피(Recipe·조리법)처럼 딱 떨어지게 수치화하거나 계량화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다.

시어머니의 장 맛을 레시피로 체계화하자고 하면 많은 이들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한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신주단지처럼 여기는 '손 맛'이란 게 얼마나 가변적인가. 그날 그날의 몸 컨디션에 따라, 심리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요리 솜씨만을 믿고 무턱대고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결과는 보나마나 뻔하다.

많은 인원을 상대로 신속하게 조리하고, 메뉴마다 일관된 맛을 유지해야 하는 음식점의 경영에선 조리법의 계량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손 맛' 같은 추상적이고도 애매모호한 요소에만 의존했다간 음식장사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한식당일수록 음식 맛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현상이 심한 것은 우연이 아닐 듯 싶다.

우리 음식이 매력적인 맛을 지니고 있음에도 중국이나 이탈리아 음식처럼 세계화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역시 '손 맛'을 체계적으로 수치화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서양의 식당가에선 "음식을 만들면서 맛을 보지 말라"는 주방 불문율이 있다. 혀끝의 미각이란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일이 맛을 보면서 조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레시피에 철저하다. 패밀리레스토랑에 갓 취업한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약간의 교육 후에 훌륭한 정찬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과학적인 레시피와 조리 시스템 덕분이다.

중식과 베트남 음식이 지구촌 곳곳에 퍼지게 된 것도 조리법의 균일화를 표방하는 미국식 프랜차이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음식이 세계에서 대접받기 위해선 시어머니의 '손 맛'도 당연히 계량화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눈썰미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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