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민심’이라는게 있다. 명절 연휴 민족 대이동을 통해 도회지와 시골, 중앙과 지방의 의견이 만나면서 순식간에 하나의 민심을 만들어 낸다. 방방곡곡이 여론의 한마당이 되는 셈이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명절 민심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명절때 친지들이 모여 앉으면 어디서나 정치가 궁금증의 대상이 된다. 정치에 대해 박식하건 무식하건 상관이 없다.
이런 걸 우리의 민족성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즈음 DJ(김대중대통령)와 昌(이회창 한나라당총재)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러냐’ ‘누구 누구는 정권의 실세라는데 혹시 이 다음에 다치는 것 아니냐’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으냐’ ‘북한에서 송이버섯을 보낸 배경은 뭐냐’등에 이르기까지 궁금증은 한정이 없다. 이런 얘기 도중 가타부타의 평가는 자연스럽게 내려 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궁금증의 압권은 한빛은행 거액 부정대출 사건일 터다. 사건의 전개과정 자체가 얘기의 맛을 돋울만큼 흥미로운 탓이다.
정권의 실세 이름이 무더기로 나오고, 액수도 1,000억원대를 넘는 등 구색이 잘 갖춰져 있다. 청와대 사직동팀도 나온다.
그런데 정작 검찰 수사결과는 의외로 단순 명쾌했다. 지점장과 업자가 결탁한 사기 대출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얘기의 꽃이 안 피어날리 없다. 말하는 사람마다 살을 붙이고, 결국 검찰발표와는 영 동떨어진 사건으로 그림이 그려지게 마련이다.
■여야는 이번 명절 민심을 겨냥해 여러모로 신경을 썼다. 민주당은 ‘추석명절 새천년 민주당이 함께 합니다’라는 홍보자료집을 만들어 요로요로에 배포했고, 한나라당은 일부러 귀성객을 찾아 다니며 당보를 뿌렸다.
컬러 인쇄물인 여당의 홍보자료집은 정권의 치적을, 흑백 인쇄물인 야당의 당보는 정권의 부도덕성을 지적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과연 이번 연휴기간 어느쪽이 민심을 끌어 들이는 데 성공했을까. 아마도 컬러와 흑백의 시각적 효과만큼 차이가 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향 어른들의 이야기, 도회지의 아들 딸들이 전한 이야기, 그것들이 다름아닌 민심이라는 것을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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