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총회의 증산합의 이후에도 국제유가가 크게 올라 에너지의 99%를 수입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현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던 각종 실물지표의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하고 있으며 금융 불안감에 따른 신용경색 가능성으로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 심리가 지속되었다.
국제유가 폭등으로 인한 물가불안은 자칫 경제 전체의 위기 혹은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단기간에 가시적 효과를 가져다 줄 고유가 대응전략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유가 징후가 가시화하기 시작했을 때 정부는 일시적 수급 불균형에 의한 유가상승으로 치부하면서 안이하게 대처해 왔다.
이번 유가폭등을 계기로 이제는 고유가 체제가 장기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거시경제정책과 에너지정책을 운용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올 경제성장률의 목표치를 수정해서라도 거시경제정책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유가를 과감히 현실화해서 소비절약을 유도함은 물론 에너지 과소비 산업구조를 근원적으로 개선하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계몽과 홍보, 차량 10부제 실시 등 비시장적인 수단은 그 효과에 한계가 있으나 단기적으로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장치들이다.
그동안 에너지 절약을 구호로만 내세워 왔을 뿐 정부나 기업, 국민 모두 실천에는 등한히 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속적 실천을 유도하기 위하여는 가격기능을 되살리는 등 시장기능을 복원하는 길 뿐이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기업이나 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가격신호를 통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간 대다수 기업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에너지 절약시설과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왔다. 시장의 가격이 신호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에너지 절약에 관련된 투자에는 금융세제상의 충분한 지원으로 조속한 시장기능의 복원을 뒷받침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에너지세제 개편안을 통하여 세입기반을 확충하고 에너지 소비절약을 유도하기로 했다. 현행 에너지 세제는 물가안정, 산업지원 등을 위해 저에너지가격정책에 기본을 두어 운용해 왔다.
이러한 가격정책이 고질적인 에너지 다소비형 사회·경제구조를 초래하였음은 물론 환경오염과 국제수지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세제개편에 따른 국민의 반발을 의식해 에너지 가격 현실화를 지연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고유가로 인한 국민경제의 피해를 오히려 늘릴 뿐이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압력을 해소하기 위하여 단기적으로 원화절상이나 교통세와 특별소비세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으나 이들 또한 고유가 체제가 장기화한다는 것을 상정했을 때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볼 수 없다.
졸속적인 대처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원리에 입각한 원론적인 정책만이 고유가시대의 근원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가격현실화 등의 시장기능 복원으로 에너지 수요를 지속적으로 억제해나가야함과 동시에 에너지 공급선의 다변화와 공급기반의 공고화를 위한 국가경제정책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는 환란극복이후 각 부문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경제시스템을 대체할 만한 안정적 경제시스템이 마련되고 있지 못하는 등 성장 잠재력 기반 확충이 여전히 미흡하다.
이는 정책 조정 메커니즘의 결여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분야에서 근원적, 사전적 처방보다는 대증요법적 처방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고유가 시대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길은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중·장기정책의 마련과 이의 실천에 매진해야 함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할 것이다.
/이만우·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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