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시골길 농업’이 미국과 남미 국가들의 ‘고속도로 농업’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품질로 승부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 프랑스 농민들의 생각이다.‘농업생산자조합 연맹’의 이브 살몽 사무총장은 “유럽 국가들이 대량생산을 통한 저가 정책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라며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는 오래 전부터 생산의 전문화와 생산량 조절, 철저한 원산지 표시제를 통해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적극적인 홍보·마케팅으로 다른 나라 농산물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펴왔다.
영농 형태로 볼 때 프랑스 농민의 39%는 축산, 19%는 곡물 중심의 대규모 경작, 12%는 포도재배에 전업하고 있으며, 20%만이 복합적인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특히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농가의 경우 대부분 4, 5대를 이어 한 곳에서 포도재배에 전념해 온 농민들로 수백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프랑스 포도주가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1930년대부터 시행된 원산지 표시제(AOC)를 통해 철저한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연간 생산되는 포도주는 약 56억ℓ. 이 중 절반 가량인 24억ℓ가 원산지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나머지도 국가가 제정한 품질 인증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포도주 원산지 표시제는 산지별 포도주의 품질을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품질에 따라 4가지로 분류되는데, 최고 품질인 ‘그랑 크뤼’는 햇빛을 많이 받는 경사지에 재배된 포도로 제조된다. 전체 포도주의 1.5%에 불과하며 생산된 포도밭 이름을 상표에 명시한다. 일반 포도주 가격이 1병에 5,000~7,000원인데 비해 ‘그랑 크뤼’는 최소 20만~30만원 수준이다. 40~50배의 가격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고품질 포도주의 생산량을 제한, 희소가치를 최대한 높이고 있다. 루이 트레부셰 부르고뉴 포도주사업자협회 회장은 “품종과 토질, 기후조건, 노하우와 전통이 결합해 명품을 생산할 수 있다”며 “‘그랑 크뤼’용 포도는 재배 면적을 엄격히 제한받는다”고 말했다.
각 고장마다 포도주에 얽힌 전설이 있고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포도주가 품질이나 생산량에서 프랑스 것 보다 뒤지지 않는 데도 프랑스 포도주가 유명한 이유는 이같은 품질 차별화 정책과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 덕분이다.
김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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