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순(白南淳) 북한 외무상의 미국행 취소는 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일행에 대한 검색사건 후 북한이 취해온 대미 강성기조의 연장으로 분석된다.외교 전문가들은 백 외무상의 미국 방문이 미국과의 양자대화보다는 유엔 총회 연설 및 제3국과의 대화에 있었다는 점을 들어 그의 미국행을 기정사실화 했었다.
특히 검색사건 후 미측의 고위 관계자가 유감 서신을 보내는 등 경색 관계를 풀기 위한 노력이 있어온 점을 감안할 때 유엔 총회 참석을 예상했었다. 이런 관측에도 불구하고 백 외무상이 미국 행을 포기한 데는 무엇보다 보안검색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에 대한 부당성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가 원수가 ‘깡패국가의 수괴’ 취급을 당하는 상황이 초래된 근본 원인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에 대한 몸수색 시도를 민간 항공사의 우발적 실수로 보려는 미국의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는 카드로 백 외무상의 유엔행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김 위원장 사건 후 “우리 인민의 존엄을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비싼가를 똑똑히 알게 될 것”이라고 미국을 강도높게 비난했던 북한으로서는 자존심이 회복되기도 전에 외교 사령탑을 미국에 보내는 것이 자칫 해프닝성 사건으로 몰고가는 서방 시각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음을 우려했을 것이다.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가 11일 “북남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외세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대미 협상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자체 인식이 남북간 대화에 주력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 고위층의 잇단 방미취소는 당분간 미국보다는 남한과의 관계개선에 힘을 쏟겠다는 의도로 비쳐질 수 있다. 대남 접근을 통해 오히려 미국과의 협상력도 높이는 외교 전술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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