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50주년, 분단 반세기의 시간을 이제 마감이라도 하려는 듯 남과 북의 통일 열기가 뜨겁기만 하다.우리는 1967년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 유학생들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국민성과 애국심을 본받아야 한다는 교육을 한번쯤 받은 기억이 있다.
물론 나라를 생각하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마음은 높이 살만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병역의 의무도 없던 642명의 피끓는 젊은이들이 일본의 현해탄을 넘어 조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전쟁에 참가한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다.
1950년 9월15일 맥아더장군의 지휘아래 최초로 참전한 재일학도 의용군. 그들은 젊고 어렸지만 가슴속엔 확고한 국가관과 자유수호에 관한 신념이 있었다.
당초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전을 지원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참전한다는 것조차 어려웠던 현실에서 642명이 어렵사리 심사를 통과해 참전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원산과 이원 상륙작전, 혜산진 작전, 고량포작전, 김일성고지 탈환작전, 백마고지 전투, 금화지구 전투 등 전국 각지의 전투에서 맹활약했고 그중 135명은 전장에서 산화했다.
그리고 265명의 초기 참전자들만이 일본으로 귀환할 수 있었고 나머지 242명은 2차대전후 맺은 미일 평화협정 때문에 제대후 그들의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채 한국에 남아야 했다.
기억속에 잊혀져 가는 재일학도의용군을 다시금 되살리고 기리는 뜻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본받아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도약의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죽음을 예견하고 인천 상륙작전에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우리의 5,000년 역사속에는 재일학도의용군과 같은 교훈을 주는 인물과 사건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물질적 자원 뿐만 아니라 그 물질을 정말로 가치있게 쓸 수 있도록 하는 이같은 정신적 자산이 우리에겐 더욱 값진 것임을 인식하고 이를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로이 조명하는 일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9월은 어느 달보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시간이 많은 달이다.
이런 때를 맞아 주변에 있는 민족혼이 깃든 장소를 찾아 선조의 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영웅 청주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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