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남북정상 회담 이후 국내 분위기가 들떠 있고 충동적 여론과 행동도 나타나고 있다.공동성명에 따라 경제인, 정치인, 종교인들까지 때로는 성급하게 행동하고 있으며 곡예단, 합창단, 교향악단을 초청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역사적 문화유산의 교류와 합동연구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현상태에서 북한이 갑자기 문화유산 교류를 제의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우선 북한 지역에 어떠한 역사 유적과 유물들이 잔존하고 있는가 하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관(史觀)이 뚜렷한 전문학자들과 국민이 올바르게 북측 정보를 알고 해석하고 대처할 수 있다. 현재 북한의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와 자료는 턱없이 부족하다.
북한 지역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 유적을 비롯해 동부여, 동예, 예맥, 옥조, 고구려, 고려 시대의 유적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으며 출토된 유물들은 각 지역 박물관과 평양중앙역사박물관에 진열, 전시되고 있다.
북한은 1946년 이후 고구려 벽화고분 40여기를 발굴해 20여기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지금까지 많은 보고서를 냈다.
이 자료들에 따르면 현재 북한 지역에는 국보급 50건, 보물급 53건, 고적 73건, 명승지 17건, 천연기념물 45건, 천연기념물 지리부문 60건 등 299건과 중요유적 266건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정확한 발굴 성과는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 자료들 역시 우리 전문학자들이 직접 입수한 것이 아니라 제3국을 통해 어렵게 입수한 것이다.
^북한은 또한 1946년부터 문화유산 보호에 대해 법적 뒷받침으로 철저히 대비했고 문화유산 정책도 1945년 8월 15일부터 1999년까지 6단계로 나눠 공산주의 역사발전단계에 맞도록 강화해왔다.
그 예로 제4기에 해당하는 1970년부터 79년까지 민족문화유산을 사회주의 현실에 맞게 발전시킨다는 취지 아래 3,200여 개의 유적과 11만 9,000 여 점의 유물을 재평가하기도 했다. 북한의 전문학자들은 이 운동 기간 중 철저한 사상교육을 끝냈다.
우리는 당시 고도 경제성장의 분위기 속에 전국에 산재한 유적 발굴과 보존관리의 초보적 단계를 겨우 벗어났을 때였다.
전문기관은 불과 1개, 박물관도 5개에 불과하고 예산도 미약한 상태였으며, 북한자료 수집은 이제 막 시작된 상태였다.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열악한 상태 속에 남북문화재 관리와 연구에서 주도권 문제를 놓고 몇 단체 간 행동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다.
북한의 전문학자들과 이런 우리 학자들이 만날 경우 그 결과에 대해 우려하게 된다.
남북한 문화유산 교류가 시작된다면 북한 유적 유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 입수와 함께 정선된 우리 학자들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게 시급하다.
엄격한 인선을 통해 진실되고 사관이 뚜렷한 전문학자들로 위원회를 구성, 북한과 상호인적교류를 장기화하고 학술논문 발표대회, 학술지 발간, 그리고 유적발굴조사 등을 공동으로 행해야 한다.
또한 상호교환전시를 통해 새로운 역사지식을 넓히고 보고서 공동집필, 해외전시 공동 출품, 그리고 보존과학지식 교환, 건조물 보수에 따른 기술제공 등을 추진해 갈 때 차원 높은 문화유산 교류와 연구가 실현될 것으로 본다.
엄정한 절차를 존중하는 문화유산교류와 연구만이 후손들에게 좋은 결과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호관 전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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