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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때아닌 석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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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때아닌 석유시대

입력
2000.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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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폭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서방국가와 아시아국가들이 서로 다르고, 나라마다도 각각 다르다.미국이나 서유럽에 경제활동의 주름살이 심각할 정도라고 한다면 생사의 경제위기를 막 벗어난 아시아 국가들에겐 구조적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10일자 9면 참조).

그러나 정작 고유가로 나라 전체가 난리를 겪고 있는 곳은 아시아보다도 유럽지역이다. 프랑스 어부들의 시위로 시작된 소동은 2주일 남짓 사이 유럽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 총리가 경제마비를 방어하기 위해 비상조치를 취하겠다고까지 밝혔지만 사태가 진정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단일 이슈로 이렇게 짧은 기간에 유럽 전역이 몸살을 앓은 예는 흔치 않다.

유가가 이렇게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은 2년도 채 안돼서이다. 당시만 해도 배럴당 10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가 왜 이렇게 폭등했을까.

단순한 설명으로는 세계경제가 급속한 팽창세를 보이면서 석유수요가 폭증하는 바람에 빚어 진 수급 불균형이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 이래 ‘석유논쟁’은 정치논리를 빼고는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작금의 고유가의 원인을 둘러싼 산유세력과 서방세력 간의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산유국들은 서방국가의 고율 세금정책과 정유회사 및 투기세력 등 외적 요인 때문이라고 대서방 공세를 취하는 반면 서방 등 석유소비국측은 산유세력의 지나친 생산량통제를 들어 증산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틈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정치적 설명’들도 언제나처럼 그럴 듯 하다. 음모론으로 자주 꼽히는 것 중 하나는 ‘파이 확대론’. 고유가에 대한 당사자 간의 일치된 이해가 있기 마련이라는 가정이다.

산유국이나 정유회사, 중개시장, 정부 등이 모두 10달러 수준때보다 폭등의 이익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선거에 연결시키는 음모론을 말하는 이도 있다. 텍사스 출신의 조지 W. 부시 공화당후보가 열세에 놓이자 이 지역의 석유업계가 유가폭등을 유도, 앨 고어 민주당후보의 경제치적 논리를 가격하려 한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일정한 분석력과 설득력을 지닌 설명도 있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지금의 고유가현상은 산유세력의 분명한 목표와 내부합의를 지닌 정치행위의 산물이다.

지난 20여 년간의 국제유가 체제를 돌아볼 때 10달러 선의 저유가를 서방의 성공적인 산유관리 때문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30달러 선의 폭등세는 OPEC세력의 반격인 셈이다.

이들 국가 중 이란 이라크 리비아 등의 회원국은 미국에 의해 ‘깡패국가’로 지목되는 수모도 겪었던 대립관계가 존재해 왔다. 이런 시각은 특히 1998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등장한 우고 차베스의 지난 2년 행보를 주목한다.

경제개발을 위한 석유수익의 절대적 필요성과 미국이 뿌려놓은 남미의 신자유주의적 풍조에 반기를 든 그는 중동 산유국들을 향해 감산정책을 끈질기게 역설, 분위기를 주도해 왔다.

차베스정부의 석유장관이 현 OPEC의장이며 이달 말 사상 두번째로 열리는 OPEC 정상회의 장소가 베네수엘라이다.

훨씬 이전 OPEC 창설때부터 베네수엘라의 주도적 역할이 다시 지적되기도 한다. 차베스는 1960년대 이미 쿠바의 카스트로, 체 게바라의 숭배자였던 체질적 반미주의자다. 얼마 전에는 리비아 방문을 강행해 미국의 ‘제거대상’인 가다피와 나란히 시내관광을 하는 제스처로 미국의 경고와 반감을 노골적으로 유도했었다.

말하자면 이번 유가폭등은 그동안 서방의 통제전략에 눌려 지내왔던 산유세력이 다시 결집하는 상징적 실질적 선택의 결과로 이는 ‘오만한 세계화’에 대한 반발의 표출이기도 하다는 얘기이다. 얼마나 들어맞는 견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견해에 하나 더 보탠다면 국제정치사에서 지배적인 초강국이 등장하면 언제나 주변세력은 결집한다는 이론이 있다.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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