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설원을 배경으로 한 애절한 사랑이라면 많은 사람들은 '닥터 지바고'를 떠올린다.지난해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러브 오브 시베리아(The Barber Of Siberia)'는 수정 같은 눈빛으로 뒤덮힌 러시아 대륙의 이국정서를 배경으로 운명을 뒤바꾼 사랑의 이야기를 유장하게 풀어낸다.
곰살맞은 에피소드와 가슴 찡한 순애보가 교차해 마치 앙증맞은 소네트와 장중한 교향곡이 번갈아 연주되는 듯한 분위기가 풍긴다.
'닥터 지바고'의 라라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여자였다면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제인 칼라한(줄리아 오몬드)은 과거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닭아 빠진 여자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 러시아에 살고 있는 발명가 더글러스 맥클라칸(리처드 해리스)은 일명 '시베리아의 이발사'라고 불리는 자동 벌목기를 정부에 납품하기 위해 로비스트 제인을 고용한다.
모스크바행 기차에서 제인에게 한 눈에 반했던 사관생도 톨스토이(올렉 멘시코프), 그의 운명은 제인이 레들로프 장군(알렉세이 페트렌코)을 유혹하기 위해 핑계삼아 톨스토이가 잃어버린 가족 사진을 들고 사관학교를 찾아 오면서 행복하고도 불행한 사랑의 무덤 속으로 빠지게 된다.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순진하면서도 장난을 좋아하는 엉뚱한 성격의 톨스토이는 영어가 서툰 레들로프 장군을 대신해 제인에게 구애를 하다,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만다. 사랑을 새치기 당한 레들로프 장군의 질투는 복수를 낳고 '황제를 사랑한다' 던 톨스토이는 황제 시해죄를 뒤집어 쓰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난다.
영화는 작은 소극(笑劇)을 곳곳에 배치해 경쾌하다. 고주망태가 된 레들로프 장군의 술주정, 맥클라칸 장군의 엉뚱한 발명담, 그리고 싱그러운 젊은 사관생도가 벌이는 귀여운 장난은 희다 못해 푸른 러시아 설원의 장엄한 분위기를 더욱 친근한 것으로 만든다.
엇갈리는 만남, 아버지는 알지 못하는 아이 등 익숙한 멜로의 구도가 사용됐으나 희비극을 적절히 구사하는 감독의 능숙한 연출력은 관객의 자연스런 감정이입을 이끌어 낸다.
주연 조연 가릴 것 없이 배우들의 연기는 수준급이며, 의상 음악이 조화롭다. 할리우드식 결말이 영화의 김을 뺀 것은 아쉽다.
이전 영화에서 주인공 이름을 '체홉'으로 썼던 감독은 이번에는 '톨스토이'라는 이름으로장난을쳤다.
미할로프감독(55)은 1991년 'Close To Eden'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1994년 'Burnt The Sun'으로 러시아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대표 감독중의 하나이다.
영화에서 그는 알렉산더3세로 출연한다.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체코가 합작으로 제작한 영화로 제작비는 우리 돈으로 580억원이다. 30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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