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무슨 일이 터지면 사실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보다 연루된 사람들의 배경이나 성격 진단이 앞선다.출세하는 사람들의 인물평을 보아도 객관적인 업적 설명 보다는 주관적인 신변잡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서로 얽혀서 돌아가는 세상살이에 사람에 대한 평가가 없을 수 없다. 문제는 판단의 기준이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일 경우 그만큼 사람을 잘못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보다는 성별이나 어디서 태어난 뉘집 자식인가가 인물 판단의 일차적인 기준이 된다.
그 다음은 소위 주변 사람들의 평가라는 것이다. 남이 잘되면 자극을 받아 자신이 노력하기보다는 남을 끌어내리고보자는 부정적인 ‘떼 정서’가 판치는 세태에서 능력있는 사람들이 흠집없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배경이나 소문이 인물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되는 풍조때문에 치러야하는 경제적 대가가 적지 않다.
외부인보다는 친족을 선호하는 세습경영 풍토, 능력보다는 인간관계나 충성도에 의해 채워지는 전문직, 상당 부분 사장되는 고급 여성인력 등의 예에서 보듯 인적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이 우리처럼 큰 나라도 드물 것이다.
사람을 쓰는 방식이 합리적이지 못하니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 온전할 리 없다. 능력보다는 학력이, 개성보다는 공존이 앞선다.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주는 교육보다 단점을 두드려 남들과 엇비슷하게 만드는 평준화 교육이 먹히는 것도 튀어나온 못이 매를 맞는 사회 율법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학생들을 지도하며 신상카드라는 것을 본다. 부모형제의 학벌, 직장, 재산과 학생의 신체지수, 교우관계 등이 인격체로서의 학생을 지도하는 일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그의 배경을 통해 판단하려는 그릇된 풍조가 교육현장과 사회일선에 퍼져있는 한 개성있는 인재가 자라나기 힘들다.
단순노동보다는 고급지식이, 산업자본보다는 정보기술이 우선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 경제가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린 싹들을 개성있게 길러야 하고, 기존의 인적자원을 능력 위주로 써야한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경쟁력이 급격히 향상된 데에는 지식기반경제에 걸맞는 창의적인 교육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평준화한 인력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우리의 교육체제가 숱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우리의 산업구조가 그 정도 수준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교육이 경제를 받쳐주기 보다는 끌어내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경쟁력있는 인적자원을 기르려면 무엇보다 교육현장과 관련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편적인 하향식 제도 개혁으로는 새로운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창의적인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
의사들을 무시한 의료행정이 초래한 의약분업 소용돌이를 교훈삼아 교육 일선에 서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경쟁을 토대로 교육정책의 기본방향이 결정되게 해야한다.
산업인력의 효율적 배분은 인위적인 노동정책이 아니라 능력과 경쟁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인 이직 동기의 활성화에서 찾아야 한다. 정리해고보다 벤처정신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사고가 필요한 부문이 교육과 인력정책이다.
국제경쟁에서 당장 살아남기 위해 은행이나 기업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지만,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경쟁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제는 경제도 사람이 우선시되는 세상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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