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귀성객들로 전국의 도로가 넘쳐나고 연휴 관광을 떠나는 가족들로 김포공항 출국장이 북새통을 이루는 바로 그 시각. 우리 사회 뒤켠 그늘에서는 어렵고 고단한 이들이 눈길 한번 제대로 못 받아본 채 서럽고 쓸쓸한 명절을 맞고 있다.고아원 양로원 등 각종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들은 “모두가 힘들었던 지난 IMF 경제위기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그나마 명절 인심만큼은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라며 허탈해 했다.
오갈데 없는 불우 청소년 40여명을 돌보고 있는 서울 중랑구 중화동의 ‘열린 문 청소년 쉼터’의 황점곤(黃點坤·36)간사는 “올들어 후원의 발길이 끊겨 몇달째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월급조차 못 주고있다”면서 “아이들도 분위기를 알고는 모두 우울한 표정들”이라고 말했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경기 광주의 ‘나눔의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 오정자(吳貞子·41)간사는 “예전이면 그래도 추석을 앞두고는 찾아오는 이들이 꽤 됐는데 올해는 완전히 잊혀진 느낌”이라며 “슬하에 자녀없이 돌아가신 정신대 할머니에게 합동차례를 지내 드릴 계획인데 어느때 보다도 초라한 상이 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명절이면 으레 정치인이나 유지 등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쌀가마니 따위를 앞에 놓고 사진이나 찍는 행사성 방문마저도 올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강서구 개화동의 지온보육원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명절을 앞두고는 후원 행사 문의전화가 적지않았는 데 올해는 그나마도 없다”며 “전엔 탐탁지 않았던 생색내기 후원조차 아쉬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각박해지는 사회 분위기는 태풍과 집중호우 이후 각 사회단체 등이 벌인 수재의연금 모금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지난해 수재민들에게 답지한 성금은 500여억원. 하지만 올해는 9일 현재까지 단 1%에 그친 5억여원에 불과하다. 수재민 1만5,000여명에게 1인당 3만원 정도 돌아가는 액수. 재해대책협의회측은 “올해 수재의연금 모금상황은 사상 최악”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웃을 돕는 사람들’의 위정희(魏貞希·33)사무국장은 “공개된 복지시설의 상황이 이렇게 하나같을진대 홀로 사는 빈곤 노인이나 수많은 소년소녀가장들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며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마저 상실한 채 급속하게 메말라 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장래준기자 rajun@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