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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이산가족들의 달라진 한가위 / '北가족들, 차례는 잘 지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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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이산가족들의 달라진 한가위 / '北가족들, 차례는 잘 지내는지…'

입력
2000.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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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이산가족들은 이번 한가위 명절을 남다른 감회로 맞는다.우선 집안의 장형(長兄)이 살아계신 것을 확인한 집에서는 제주(祭主)부터 바뀌었다. 부모님의 생사와 기일도 모르는 어정쩡한 차례는 이제 지내지 않게 됐고, 차례상에는 북한의 조상과 부모를 ‘배려’해 가능한한 고향의 술과 음식들이 오른다.

무엇보다 그동안 몇 안되는 친지로 외롭고 썰렁했던 명절이 이제는 마음으로나마 풍성해졌다. 북한의 피붙이들이 더이상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아닌 현실 속의 가족으로 다가온 때문이다.

◆제사 제자리 찾아가기

북한의 인민배우 박 섭(朴 燮·73·조선번역영화제작소 소장)씨를 만난 동생 병련(63·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형님이 차례와 제사를 지내기로 해 부모님 영정과 기일을 받아갔다”면서 “이번 추석부터는 남측 가족끼리 모여 간단한 추도묵념 등으로 대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병련씨는 “제사를 형님이 가져가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하다”면서 “한가위 아침에 ‘차례는 잘지냈나’ 하고 안부전화라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아쉬워했다.

서울에서 오빠 리래성(68)씨를 만난 동생 이지연(53·아나운서·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도 “상봉 전까지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를 언니가 지냈는데 이번에 오빠가 내려와서 부모님 제사를 모셔갔다”고 말했으며 북에서 동생 병선(炳善·69)씨를 만난 김병서(金炳瑞·73·경기 의정부시 녹양동)씨도 이번 추석부터 제사를 남에서 모시기로 했다.

◆차례상에 북한술과 음식이

서울에서 누나 이봉순(李奉順·66)씨를 만난 강식(李康息·65)씨는 “이번 추석에 경남 하동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서 차례지낼 때 북한술을 묘에 뿌려드리기로 약속했다”면서 “돌아가신 부모님께 ‘누나가 직접 가져온 술입니다’라고 말씀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규식(全奎植·72)씨도 이번 차례상에 북한의 동생 경식(敬植·68)씨가 가져온 들쭉술을 쓰기로 했다. 자녀들에게는 역시 선물로 받은 보드카를 한잔씩 돌리며 상봉 당시 이야기 등을 자세히 알려줄 생각이다.

황기봉(60·서울 성동구 하왕1동)씨는 “시장에 나가보니 고사리와 도라지 같은 북한산 산채가 나왔다고 해 이번 차례상에 올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

암 투병 와중에 맏아들 안순환(安舜煥·65)씨를 만나 전 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던 이덕만(李德萬·87·경기 하남시 초일동) 할머니는 “선산과 형제들이 모두 남한에 있어 제사와 차례는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면서 “통일되기 전까지는 둘째가 제주를 맡아야지”라고 안타까워했다. 순환씨의 여동생 순옥(63)씨는 “이번 추석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상봉 사진을 다시 한번 들춰볼 예정”이라며 “어머니가 오빠를 만난 이후 50년 맺힌 한을 풀어서 그런지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위안을 삼았다.

평양에서 아들, 딸을 만나 부인이 이미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던 한시운(79)씨는 이번 추석에는 아들로부터 받은 부인의 영정을 품에 안고 임진각으로 가 북녘을 바라보며 이제 ‘편히 쉬라’고 용서를 빌기로 했다.

한편 상봉 순번 102번으로 안타깝게 북한을 방문하지 못한 강병조(姜炳祚·81·경기 군포시)씨는 “북에 계신 부모와 형제가 더더욱 사무치게 그립다”면서 “이번 추석은 가장 가슴 아픈 추석이 될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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