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IMF체제 진입 이후 3번째로, 예상보다 이른 경기회복 때문인지 그 어느 때 보다 풍요롭다. 무엇보다 러시아워와 같은 교통혼잡이 하루종일 지속되는 것을 보노라면 추석은 역시 민족 최대의 명절이고, 경기는 좋아졌구나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명절이 오히려 괴롭고 외로워 속으로 눈물짓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언제 직업을 구할 수 있을지 막막한 장기 실업자들과 상용 근로자보다 많은 임시·일용직 근로자들, 시중에 자금은 풍부한데도 차례를 지내자마자 돈을 구하러 뛰어야 하는 중견·중소기업가들…. 갈 수록 심화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의 어두운 그림자는 추석 보름달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돈’이 모든 가치척도의 기준이 되는 현상이 심화하면서 자신과 가족, 같은 이해집단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이기주의의 벽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명절을 맞아 더욱 절실히 실감하게 된다.
IMF 이후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것들이 마침내 고착화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차례상을 보고 조상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세계화·개방화 등으로 외국산 제수(祭需)가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됐지만, 올해는 조금 특별하다.
차례상에 오른 주요 농수산물 가운데 상당 부분이 중국산이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놓고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이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값이 싼 수입 농수산물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던 후손들을 탓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어떤 식으로 설명드려야 할 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한가위 달을 보면서 올해는 무엇을 기원할 것인가. 계속되고 있는 의료파행으로 무엇보다 아프지 않도록 해 달라고 바라는 것이 첫번째인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언제나 추석일 수 있지만, 일상이 힘든 서민들에게는 추석이 아주 특별한 날이다.
둥근 달을 보면서 내년에는 각 부문에서 양극화 현상이 해소되어 모든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명절이 되도록 빌어 본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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