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악의 ‘인플레국’인 에콰도르가 9일 자정 1884년부터 사용해 온 자국화폐 수크레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화를 공식화폐로 채택했다. 이에따라 미국 달러화를 공식화폐로 채택한 국가는 파나마를 비롯, 11개 국가로 늘어나게 됐다.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에콰도르는 잇따른 정치·경제 혼란으로 연간 104%에 달하는 인플레율에 시달려 왔다. 인플레의 원인은 정부가 무책임한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통화발행을 남발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비효율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금융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면서 수크레의 가치는 지난해 달러당 7,000 수크레에서 올 초 3만 수크레로 폭락했다.
따라서 달러 채택은 정부의 통화남발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여겨진다.
에콰도르는 지난 6개월간 준비기간으로 수크레와 달러화를 함께 써왔으며 모든 언론들이 지난주부터 9일까지 모든 수크레화를 달러화로 교환할 것을 홍보함에 따라 은행 앞에는 환전하려는 시민들의 줄이 이어졌다. 이미 기업들은 대부분 수크레화의 결제를 거부해 온지 오래다. 이에대해 에콰도르 중앙은행은 8일 “현재까지 4억2,000만 수크레가 회수됐으나 아직 4,100만 수크레가 시중에 남아있는 상태”라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년 3월까지는 수크레를 교환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준비기간을 통해 호전된 경제지표 등으로 미루어 달러화 채택은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경제전반의 안정심리로 지난 1월 14.3%이던 인플레율은 8월 1.4%로 낮아졌다. 레오폴드 바에즈 중앙은행 총재는 “달러는 경제몰락을 막고 구조조정의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시민들도 “혼란하기는 하지만 달러화가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달러와 수크레의 극심한 환율차이로 인해 당분간 서민생활에서의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로 생필품 거래를 할 경우 엄청난 거스름 돈을 준비해야 하지만 계산할 화폐 단위조차 없는 형편이다.
일시적으로 인플레율이 감소했지만 달러화 채택 국가들이 대부분 큰 환율차로 인해 어김없이 ‘물가 폭등’의 후유증을 겪은 전례로 미뤄 에콰도르 역시 또 다시 고인플레의 시련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국민들중 3분의 2가 월평균 소득 30 달러 이하인 반면 5인 가족의 생계비는 2월 197 달러에서 8월 286 달러로 치솟는 등 물가는 여전히 불안하다.
주권의 상징인 화폐를 포기한다는 것도 국민들에겐 큰 아쉬움이다. 사회운동가와 예술가들은 9일을 ‘수크레 장례일’로 지정, 수크레가 가득찬 관을 메고 중앙은행에서부터 공동묘지까지 행진했다.
이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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