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 고향방문단이 22~27일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해외 친북 조직의 대명사로 통해온 조총련 대표단의 한국 방문은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의 결과지만 앞으로 화해 정착의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의미 고향방문단은 사실상 조총련의 공식대표단이다. 그동안 조총련계 동포의 개인적 방한은 잇따랐지만 공식 방문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방문단에는 단장인 박재로 부의장을 비롯한 조총련 중앙조직 간부들이 ‘지원 요원’으로 포함돼 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회장인 박 부의장은 북한 정권 탄생 52주년 축하단을 이끌고 지난 4일 평양을 방문했던 실력자다.
또 조선통신사와 조선신보 기자를 제외한 50명의 ‘순수’ 고향방문단도 수많은 신청자 가운데 엄선됐다.
따라서 이번 방한은 인도적 배려에 따른 대한적십자사의 초청 형식을 띠고 있지만 한국 정부가 조총련을 인정, 입국을 허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총련은 물론이고 대한적십자사도 지속적인 추진을 다짐하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남북 화해를 상징한다.
경과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조총련 동포의 방한이 합의된 다음날인 8월1일 서만술(徐萬述) 조총련 제1부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광복절에 1차 방문단을 보내고 싶다고 밝혔다. 북한측에 끈질기게 실현을 요청했던 숙원이 풀린 데 따른 발 빠른 조치였다.
조총련은 이어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와의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조총련은 처음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임시여권 사용에 난색을 표하는 한편 민단이 조총련 동포를 포함, 연2회 실시해 온 재일동포 모국방문단 사업의 중지와 방한 신청 창구를 조총련으로 일원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같은 태도는 민단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애초에 동포사회의 현실과 거리가 있는 합의에 불만을 느꼈던 터에 25년간 공들인 사업을 일거에 무너뜨리려는 조총련의 움직임을 좌시할 수 없었다.
이후 난항을 거듭한 교섭은 조총련이 현실을 수용, 임시여권 이용과 민단 모국방문단 사업과의 병행 방안을 받아들이면서 풀렸다.
과제 고향방문단에 대한 조총련의 의욕은 조직 유지 차원에서도 불가피한 것이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1999년말 현재 재일동포는 63만6,500여명이다.
이중 ‘한국적’을 택하지 않고 ‘조선적’에 머물러 있는 조총련계 동포는 20만명에도 못미친다. 조총련계 동포의 약 90%가 한국에 고향을 두고 있으며 1세 동포를 중심으로 죽기 전에 고향땅을 밟고 싶다는 희망이 워낙 강하다.
남북 대립의 축소판이었던 민단·조총련 대결에서 한국 방문의 매력은 그만큼 컸다.
우선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됐지만 민단과 조총련의 고향방문단 주도권 다툼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양측이 논의중인 협의체 구성 등 화해 조치가 보다 진전돼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민단계 동포의 북한 방문 실현도 상호주의 원칙상 중요한 과제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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