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월군 영월읍 문산2리.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집 흙벽에 빛바랜 옛 플래카드가 바람에 너덜거리고 있다. ‘영월댐 조기결정 수몰주민 살려주오.’산비탈 밭뙈기를 일구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있는 이 마을 36가구 주민들에게 다가오는 추석은 오히려 심란하기만 하다. “이게 헛간이지 집 입니까. 명절이라고 밖에서 누가 찾아올까봐 겁납니다.”
영월댐 수몰예정지였던 마을들 곳곳이 폐촌(廢村)같은 모습으로 버려져 있다. 10년전 댐건설 계획이 발표된 뒤 당국에서 어차피 사라질 마을이라는 이유로 다른 농가에 주어지는 각종 지원을 철저하게 끊었기 때문.
영농자금지원이 중단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역개발사업, 다년생 작물재배와 건축물 증·개축 등 생활개선을 위한 일체의 행위가 금지됐다. 심지어 전기마저 들여주지 않아 다들 호롱불로 밤을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19세기 생활 모습이다.
5일 수몰민대책위 영월군위원장인 엄기준(44·농업)씨 집에서는 대낮부터 막소주에 취한 네집 부부가 이런 신세한탄들을 하염없이 풀어놓았다. 아낙네들 두엇은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며 눈물까지 떨궜다.
“수몰 예정지가 아니었던 이웃 동네들은 그동안 정상적으로 정부보조와 융자를 받아 포도 표고버섯 등 고소득작물을 재배하고 주택도 새로 지어왔는데, 우리는 10년동안 축사는 물론 화장실이나 부엌조차 손대지 못했습니다.
밤이면 천장에서 쥐가 들끓어 잠을 설칠 지경입니다. 사는 게 아니지요.” “오죽하면 3개군 수몰민대책위원장(이영석·38)의 부인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했겠습니까.”
주민 엄정옥(50)씨는 “영농자금대출이 안되니까 할 수 없이 고리채를 얻어 농사를 짓지만 이자는 커녕 애들 학비조차 벅차다”며 “올해는 주 소득원인 고추마저 탄저병이 돌아 농약값조차 못건지게 됐다”고 기막혀 했다.
역시 수몰예정지였던 인근 문산1리 30여가구 주민들은 여전히 거룻배가 유일한 교통수단. 비만 좀 오면 세상과 단절돼 강 너머 분교에 다니는 이 마을 아이들은 걸핏하면 결석이다. 수몰 예정지만 아니었어도 벌써 다리가 놓였을 곳이다.
문제는 정부가 댐건설 백지화 발표때 이들 수몰예정 고시지역 주민들에게 지난 10년간의 고통을 보상할 대책을 약속하고도 지금껏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대통령의 댐 백지화발표(6월5일)후 두달이 지났지만 아직 댐예정지 고시조차 풀리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주민 김영복(51)씨가 끝내 목소리를 높이며 울분을 터뜨렸다.
/영월=곽영승기자 yskwak@hk.co.kr
주민들, 손배소 제기도 추진
강원도는 대통령의 발표에 맞춰 수몰민에 대한 종합 지원대책을 즉각 발표했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이행된 것은 하나도 없다. 한 주민은 “그 사람들 하는 짓이란 게 늘 그렇지요. 솔직히 기대안합니다”라고 냉소했다.
수몰민대책위는 환경단체와 공동으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3개군 5개읍·면에 산재해 있는 526가구의 수몰 예정지 주민들이 143억원이라는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어 도저히 상환 능력이 없습니다. ” 더구나 부채의 90%가 영농자금 이자의 세배인 연리 13.5%인 악성부채다. 그동안 연체이자만 7억원.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다.
주민들은 정부가 예정지 고시조차 풀지않는 것은 “어떻게든 댐을 건설하겠다는 저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부가 그런 의도로 차일피일 시간을 벌려들면 죽어나는 것은 우리들 밖에 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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