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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이 생기를 머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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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이 생기를 머금다

입력
2000.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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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낀 하늘, 그리고 폭우가 쏟아진 후 가을 창천(蒼天). 6일 MBC 수목 미니시리즈 '비밀'(13일 첫방송) 시사회 후 만난 김하늘(20)의 실체와 극중 배역에서 묻어 나오는 극단적인 이중의 느낌이다.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들떠 있다. 생기가 돈다.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의 연기에 후한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화면속의 모습과 일상의 태도에서 김하늘은 이전과 분명 달랐다. 청바지 광고 모델로 데뷔한 후 영화 '바이준' 과 '닥터K' 에서 방황하는 비련의 젊은이 역을 맡았다.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지난해 6월과 10월 방송된 드라마 '해피투게더' 와 '햇빛 속으로' 촬영 현장에서 만난 김하늘은 외모에서 청순함만 풍겨 나올 뿐 대사전달초자 잘 안되는 딱딱한 연기자였다.

연기력 부족에 대한 지적에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출생의 비밀을 모른채 가난하지만 건강하고 밝게 살아가고 이복동생에게 연인을 뺏기면서 가슴 아파하는 '비밀'의 희정 역은 김하늘에게 잘 맞는 옷같다.

"영화 '동감' 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희정역이 마음에 드는데다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고, 그걸 인정해준 것같아 기쁘다."

당당하다. 불과 1년전 보였던 수세적인 웅크림은 전혀 없다. 그는 서서히 컵에 따르면 컵모양이 되고, 주전자에 넣으면 주전자 모양이 되는 액체 같은 연기자로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대중앞에 나서면서 그는 청순과 맑음, 우울과 절망이라는 양극단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교차하는 외양으로 눈길을 끌었다.

'청순' 과 '우울' 의 성채는 그가 맡은 극중 배역으로 더욱 견고해졌다. 이해타산적이고 일회용 사랑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그의 청순함은 더욱 빛을 발했다.

"연예계에 데뷔 직후부터 숙명처럼 제이름 앞에 붙는 '청순가련한' 이라는 수식어가 싫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해 연기의 폭을 넓히겠다."

그는 이날 평소 즐겨입던 파스텔톤의 은은한 연두색의 의상을 벗어던졌다. 대신 강렬한 분홍색 옷을 입었다.

더 이상 신기루 같은 이미지로만 승부하는 연기자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표명이라는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비밀'의 희정역은 김하늘에게 연기자로서 분수령이 될것으로 보인다. 영화와 달리 카메라워크를 최대한 배제하는 드라마에서 그가 얼마나 개연적인 일상성을 소화해내느냐의 여부에 따라 3년째 접어든인 그의 연기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는 김하늘. 이말이 실천력을 담보하지 못하면 그도 어쩔수 없이 '청순가련형' 이 연기부재로 이어지는 탤런트의 일부로 포함될 것이다.

'스타론'의 저자 에드가 모랭은 "드라마에서 스타는 영혼을 보여주려하고 신인은 육체를 보여주려 한다" 고 했다. '비밀'에서 그는 영혼을 보여줄까, 육체를 보려줄까. 일단 출발은 좋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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