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쌍계사와 신응사 두 절은 모두 두류산 (지리산) 깊숙한 곳에 있어 푸른 산봉우리가 하늘을 찌르고 흰 구름이 산 문턱에 걸려있다. …. 물만 보고 산만 보다가 그 속에 살던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니 산 속에서 품었던 좋은 생각들이 하루 사이에 언짢은 생각으로 바뀌어 버렸다.
훗날 정권을 잡는 사람이 이 길로 와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모르겠다' (남명 조식이 1558년에 쓴 '유두류록(遊頭流錄)' 중에서)
조선 사대부들은 자주 지리산을 찾았다. 이들은 천왕봉에 올라 천하를 내려다보며 정신적 쾌감을 느꼈고, 청학동 삼신동 등을 거닐면서 신선의 세계를 맛보았다.
당시의 심경과 풍경을 노래한70편 정도의 지리산 유람록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이 중 자료적 가치가 높은 이륙 김종직 남효은 김일손 조식 양대박 박여량 유몽인 성여신 등 9명의 유람록을 모은 책이다.
이 중 조선 중기 문인인 양대박 박여량 유몽인의 글은 국내 처음으로 번역됐다.
특히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조식의 글은 유람 도중 역사를 회고한 글의 전형으로 꼽히는 명문이다.
악양에서는 고려시대 이 곳에서 은거한 한유한을 생각했고, 화개를 지나면서는 역시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낸 정여창을 떠올렸다.
쌍계사에서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불우한 삶을 회고했다.
그의 유람관은 바로 '간산간수 간인간세(看山看水 看人看世)' 이다. 산과 물을 구경하며 그 산수에 깃든 그 시대의 인간과 사회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유람록이 조식의 글과 비슷한 것은 아니다.
'유람동기, 날짜별 기록, 유람 총평' 으로 이뤄진 글 속에는 실로 다양한 내용과 심정이 담겼다. 당대의 불교와 무속을 비판하고 역사를 회고한 부분도 있고, 성리학에 기반한 자아성찰과 심성수양의 대목도 보인다. 조선 산하에 대한 찬사도 빠지지 않는다.
'조의제문' 을 지은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은 지금의 영신봉에서 쌍계사 방면을 바라보며 신라시대 최치원의 불우를 탄식했고, 당쟁의 와중에서 물러났던 유몽인은 자신을 항아리 속에서 태어났다가 죽은 초파리에 비유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알렸다.
박여량은 천왕봉을 "하늘에 닿을 듯 높고 웅장하여 온 산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 마치 천자가 온 세상을 다스리는 형상" 으로 비유했다. 책에는 한문으로 된 원문도 실려있어 사료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난해하기로 이름난 최치원의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의 비문도 알기 쉽게 번역돼 부록으로 실렸다. 번역은 경상대 한문학과 최석기 교수 등이 맡았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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