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집들이 어떻게 하늘높이 올라갔나전국 곳곳에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서울의 63 빌딩이나 삼성 플라자처럼 유리와 강철 빔으로 이뤄진 것이 대부분이다. 서양에도 고층빌딩이 많지만 특이한 겉모습이 눈에 띄는 건축물은 더 많다. 런던 그리니치에 세워진 지붕 지름 320㎙ 짜리 밀레니엄 돔이 대표적이다.
이 건물들이 효율성과 외양만을 위해 높아지고 화려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집들이 어떻게 하늘 높이 올라갔나' 는 흔히 지나치기 쉬운 건축물의 숨겨진 비밀과 인류 거주양식의 역사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부제는 그래서 '움막집에서 밀레니엄 돔까지' 다. 인류가 왜 건물을 높이 짓기 시작했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욕실과 화장실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등을 빼곡한 사진과 건물 설계도를 통해 설명한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무미건조하기만 했던 건축사는 바로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는 생생한 생명체로 변신한다.
저자 수잔나 파르취(48)는 독일 빌헬름-하크 미술관에서 일한 뒤 1997년 서양미술사를 알기 쉽게 풀이한 '당신의 미술관' 을 펴낸 프리랜서 작가이다.
저자는 우선 고층건물이 설 수 있었던 기술적 배경으로 튼튼한 기단과 골조건축술의 발명을 들고 있다.
튼튼한 기단의 대표적 예로 꼽은 것이 14세기에 세워진 아미엥 대성당이다. 성당의 기단은 7~9㎙ 높이로 지하에 만들었는데 높이만 해도 3층 건물에 해당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높이 199.5㎙의 마인 타워도 대단한 건축물이다.
이 도시 토양은 놀랍게도 황토와 점토로 이뤄져 있고 단단한 바위는 지하 60㎙ 아래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마인 타워는 강철과 콘크리트로 된 112개의 말뚝을 지하에 심어 그 위에 세워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말뚝 심기' 방식이 현대 건축에서도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반대로 기단이 잘못돼 생긴 건물의 피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기울어진 탑 중 가장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피사는 바다 근처에 있는데 모래가 많은 토질이어서 건축가는 기단을 땅속 깊이 세우지 않았다.
처음 3층까지 세우자 탑은 곧 기울기 시작했고 건설은 중단됐다. 100여년 후 다른 건축가가 기울기를 수정하려고 4층부터 가라앉은 쪽을 더 높게 했지만 높이 55㎙의 탑은 오히려 더 기울기 시작했다.
저자는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기술적으로 1,600㎙의 높이까지 마천루를 세울 수 있는데 왜 그러한 건물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까.
'아무리 골조 빔으로 정교하게 만들어도 100 층 이상 건물 꼭대기는 수시로 움직이다. 어느 누가 배멀미가 나도록 흔들거리는 곳에 사무실을 둘 것인가'. 저자의 명쾌한 대답이다.
책은 이밖에도 현재 남아있는 그리스 신전에 지붕이 없는 이유, 뮌헨 올림픽 타운과 밀레니엄 돔의 건축학적 비밀 등을 파헤친다.
그리스 신전 지붕은 그리스인이 더 이상 신들을 믿지 않게 되면서 지붕 재료를 다른 건축물에 사용했기 때문에 없어졌다.
또한 계단의 발명으로 인해 건물이 1층에서 2층으로 수직상승할 수 있었으며, 최초의 임대 아파트는 이미 고대 로마에서 탄생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내놓는다.
그러나 꼼꼼하고 정교한 저자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책의 미덕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저자의 논거는 오로지 서양 건축물이다.
비록 서울 거리를 뒤덮고 있는 것이 이 서양건축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엇비슷한 아파트와 단독주택에서 사는 우리로서는 책의 '부엌과 욕실' 편에서 저자의 번뜩이는 혜안과 재치를 느낀다. 16세기에 세워진 프랑스 샹보르 성. 지붕 위로 뾰족히 솟은 화려한 첨탑도 인상적이지만 성의 방이 무려 440개, 벽난로가 365개에 달하는 엄청난 건축물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 성의 화장실이 귀퉁이 탑에 있는 12개의 좌식 변기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뒤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털어놓는다.
"이 성에 초대된 사람들은 어디서 생리작용을 해결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도 급한 사람은 야간용 요강이나 정원 구석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 성에는 당시 기사들이 살던 성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악취가 풍겼다."
저자는 중세가 오히려 고대 로마보다 욕실과 화장실 문화에서는 한참 뒤떨어졌다는 증거도 내놓는다. 4세기 로마에는 856개의 공중목욕탕이 있었고 공중화장실만 104개가 있었다.
기원전 33년에는 이미 덮개가 있는 배수로까지 등장했다. 이에 비해 중세에는 배설물과 하수는 골목길로 그냥 흘러 들어 길가에는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났다.
청결함에 관한 한 서양건축사는 직선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 황토방이 인기를 끌고 유리 건축물이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몰리는 현실을 볼 때, 단선적인 역사발전론은 건축사에서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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