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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옛문화를 찾아] (1)허영환교수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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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옛문화를 찾아] (1)허영환교수 답사기

입력
2000.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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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문화는 근대 이전까지 동양문화의 첨단에서 각국에 막대한 영향을 주어 왔다.문화적 자긍심이 높은 중국은 지금의 사회적 급변 속에도 고대 문화유산 보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동양미술사학자인 허영환 성신여대 교수는 대륙의 문화유산을 찾아 7, 8월 두 달 동안 85곳을 현장답사했다. 그의 답사기를 통해 문화유물의 보존실태와 동양적 미학 등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 베이징(北京) (上)

베이징(北京)의 국제공항인 서우뚜지창(首都機場)에 내리면 먼저 규모와 시설에 놀란다. 2년 전의 서우뚜지창과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김포공항보다 10배는 더 넓고, 탑승구도 63개나 된다.

중국은 과연 큰 나라다. 땅 넓이는 우리나라의 44배, 인구는 18배나 된다.

이렇게 큰 나라가 79년의 개혁개방 선언 이후 80년대의 준비기와 90년대의 도약기를 거쳐 2000년대의 도약기에 접어든 것이다.

정치ㆍ경제ㆍ사회 분야 뿐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눈부시게 변하고 있다. 박물관ㆍ미술관ㆍ기념관ㆍ유적 등도 규모와 내용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 간다.

베이징 톈진(天津) 정쩌우(鄭州) 뤄양(洛陽) 시안(西安) 셴양(咸陽) 난징(南京) 상하이(上海) 등의 거의 모든 문화유산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달라지고 있다.

우선 베이징 중심에 있는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ㆍ꾸궁뽀우위엔)을 찾았다. 중화민국 초대총통인 쑨원(孫文ㆍ1866-1925)이 명ㆍ청(1638~1911) 두 나라 때의 황궁인 자금성(紫禁城ㆍ즈진청)을 개방하고, 황궁 유물을 체계적으로 정리ㆍ전시하여 박물관으로 만들도록 한 것이 오늘의 박물원이다. 1914년이었다.

고궁박물원이라는 커다란 현판도 쑨원이 쓴 것이다. 이 현판은 박물원의 남쪽 문인 오문(午門) 위에 있지 않고 북쪽 문인 신무문(神武門) 위에 있다.

자금성의 넓이는 72만㎡이고 건축 면적은 16만㎡나 된다. 간수로는 9,000 간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궁궐이며 박물원이다.

박물원을 제대로 보고 알려면 중국의 역사ㆍ미술ㆍ·건축ㆍ조경등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나게 크구나, 온통 노란 색과 붉은 색으로 칠했구나' 라고만 할 것이다.

중국 미술의 특징은 거대함ㆍ대칭성ㆍ사실성ㆍ섬세함ㆍ화려함 등이다. 건물의 크기와 구조, 좌우 대칭으로 세운 배치, 화려하게 장식한 내부 등을 보면서 중국ㆍ중국인ㆍ중국문화를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궁정의 사적과 역대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고궁박물원에는 현재 100만 점이 넘는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약 1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전시품과 건물 등만 보려고 해도 5시간 이상 걸린다.

이렇게 많은 유물 가운데에서도 청의 건륭황제 13년(1748)에 만든 금조4비관음좌상(金造四臂觀音坐像)은 중국미술, 특히 건륭시대의 공예미술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화려ㆍ섬세하면서 완벽한 대칭미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교와 불교에도 심취했던 황제의 신앙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보석까지 상감하였다.

천안문(天安門ㆍ티엔안먼) 광장의 동쪽에 있는 중국역사박물관(中國歷史博物館ㆍ중궈리스뽀우관)의 관장은 필자가 찾았을 때 "구석기ㆍ신석기 시대부터 청대까지, 다시 말하면 100만년 전부터 80년 전까지의 중국 역사 유물을 통사적으로 볼 수 있는 박물관" 이라고 소개했다.

남북 313m, 동서 149m, 높이 40m, 전시 면적 8,000㎡나 되는 이 박물관에는 30여 만 점의 유물이 있는데 전시실 개보수와 내진(耐震) 공사 때문에 2002년 봄까지는 휴관 중이었다.

다만 둔황(敦煌)학 100주년 기념으로 한쪽에서 둔황예술대전이 크게 열리고 있었다. 둔황에서 가져온 실물과 복제품ㆍ복사품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 박물관의 30 여 만 점이나 되는 유물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청동기(또는 동기)인데, 그 중에도 전국시대의 인형동등(人型銅燈)이다. 높이가 21.3cm이고 아래 받침의 직경이 11.5cm이니까 그리 크지 않은 등잔이다. 1957년 산둥(山東)성에서 출토된 귀물이다.

10㎝ 정도 키의 사나이가 두 손에 등잔을 받쳐들고 있고, 발 아래에는 엎드린 용이 있다. 2300년 전 작품인데도 사실감이 넘치는 명품이다. 당시의 용 신앙과 과학기술, ·생활도구 등을 볼 수 있다.

7월 6일 하오. 루쉰박물관(魯迅博物館ㆍ루쉰뽀우관) 뜰에는 백일홍과 칸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40여 년 전 `아Q정전' 등 루쉰(1881~1936)의 작품을 읽은 뒤부터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이며 혁명사상가인 그를 잊지 못하는 필자는 여행 중에도 그와 인연이 있는 곳은 거의 다 찾아다녔다.

베이징의 루쉰박물관은 루쉰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는 집 같아서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아름다웠다.

전시실인 진열전람청 서쪽의 루쉰이 살던 고거(故居)도 베이징 서민건축의 특색을 잘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건물이었다.

루쉰이 1924년에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이다. 좁은 정원에는 꽃이 다 진 정향수 세 그루만 서 있었다. 멀리서 온 나그네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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